[문화의 향기] 조력자에 머물지 않는 여성 도둑들 이야기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가 있다. 범죄자들이 무언가를 훔치기로 모의하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복잡한 플롯으로 표현하는 영화를 뜻한다. 1973년의 ‘스팅’처럼 전설적인 고전도 있지만, 21세기의 대표적인 케이퍼 무비를 꼽자면 2001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최근 반갑게도 오션스 일레븐의 후속편이자, 2007년 ‘오션스 13’ 이후 맥이 끊겼던 ‘오션스 시리즈’의 새로운 스핀오프 ‘오션스 8’이 개봉했다. 이번 작품은 아주 특별하게도 8명의 주인공 모두가 여성이다. 이 8인의 캐릭터를 과연 누가 맡을 것인지가 미국에서도 관심이 높았는데 최종 낙점된 주연 배우의 리스트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출연 배우들이 받은 미국 아카데미 트로피가 총 4개, 골든 글로브 수상은 총 6회에 달할 정도로 연기, 흥행 모든 측면에서 최고의 여배우들이 모인 흥미로운 케이퍼 무비가 만들어진 것이다.

오션스 8의 가장 큰 즐거움은 현재 세계 영화계를 이끌고 있는 세 명의 여배우 샌드라 불럭,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를 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이번 도둑들의 목표는 1500억원짜리 보석이고, 그 보석이 놓일 곳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갈라 파티이다 보니 곳곳에 배치된 하이 패션과 주얼리의 화려한 비주얼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오션스 8의 타깃이 되는 1500억원짜리 목걸이 ‘투상’은 명품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가 제작해 제공했다. 이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하이 주얼리 아틀리에의 장인들이 모여 8주간의 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니 그 영롱함을 스크린을 통해 감상하기 바란다. 테니스와 보그(VOGUE) 편집장 애나 윈터의 상관관계 등 패션산업이나 스포츠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소소한 유머도 곳곳에 숨어 있다. 실제로 ‘멧 갈라(Met Gala)’는 미국의 대표적인 패션 파티로, 보그 편집장 주관 아래 수많은 셀럽이 매년 다른 주제로 의상을 차려입고 참석하는 자선파티다. 그런 배경 덕에 카메오 출연진도 화려해 슈퍼모델, 스포츠 스타 등이 등장, 촌철살인의 대사를 던지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오션스 8은 전작 시리즈보다 높은 오프닝 기록을 세우며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여성 도둑들의 케이퍼 무비로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할리우드에서 여성 흥행파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17년 북미 흥행 톱3를 차지한 세 편의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미녀와 야수’ ‘원더우먼’은 모두 여성이 주인공을 맡은 작품이다. 세계 영화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마블 스튜디오의 제작담당 사장 케빈 파이기는 얼마 전 “앞으로 더 많은 여성 감독이 마블 히어로 영화를 연출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마블은 2019년 개봉 예정인 마블 최초의 여성 히어로 솔로 무비가 될 ‘캡틴 마블’ 외에 다양한 여성 캐릭터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비단 선도적인 기업의 일만은 아니어서 할리우드의 많은 스튜디오가 단순 조력자에 머물지 않는 여성 캐릭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두 편이 다음주 개봉한다. ‘신세계’를 만든 박훈정 감독의 ‘마녀’와 관부(시모노세키) 재판을 소재로 한 ‘허스토리’다. 한국 영화산업도 미래지향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선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관객이 다양하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시장도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