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인적자본을 축적하는 실업수당
‘일할 능력이 있는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정부가 부양해야 한다면 화를 낼 사람이 많을 것이다. “멀쩡하게 노는 사람까지 나라가 먹여 살리나?” 필자가 몇 년 전 어느 어르신과 대화하다가 들었던 꾸중이다. 일반 여론도 이와 비슷하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실업급여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를 꺼린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이 주는 보험급여다. 2016년 1962만 명의 임금노동자 중 35.7%, 701만 명이 고용보험 미가입자라고 한다. 그런데 자영업자 570만 명, 무급가족노동자 120만 명 등은 아예 임금노동자에서 빠져 있다. 스스로는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노동자’가 절반이나 된다고 한다.

실업급여 지급에 이렇게 소홀해도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실업이 가난을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점에서다. 가난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할 뿐 아니라, 노동력 상실과 사회 불안이라는 비용을 야기한다. 빈곤은 질병과 같아서 예방은 쉽지만 치료는 어렵다. 실업이라는 위험한 시기에 실업수당이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책이다.

둘째, 실업수당이 없으면 고용은 절대 유연해지지 않는다. 실업수당은 이직과 재취업의 골짜기를 이어주는 출렁다리와 같다. 다리도 없는 절벽 밑으로 밀어 넣는 해고에 저항하지 않을 노동자는 없다. 그러나 실업수당이 충분하면 노동자나 사측이나 해고의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노동인구가 줄고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할 21세기에 고용유연성의 확보는 필수 전략이다. 노동의 이동이 원활해야 부족해지는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산업 변화에 맞춰 필요한 곳으로 인재가 이동한다.

실업수당은 주지 않으면서 노동만 유연해지라는 주문은 “나는 살고 너는 죽으라”는 말과 같다. 이건 거래가 아니다. 노동의 유연성이 필요하면 실업수당을 넉넉히 줘야 한다. 그래야 계약이 성립된다.

셋째, ‘실업수당이 있는 실업기간’은 직업능력을 향상시킬 여유를 준다. 앞으로 30~40년간 중·고령자가 경제를 이끌어 가야 한다. 직업능력을 키울 평생학습체제를 대폭 강화해야 이 시기를 넘을 수 있다. 고용보험이 주는 또 하나의 보험급여, ‘직업능력훈련’은 실업급여와 짝을 이룬다.

실업수당은 ‘노는 사람에게 주는 적선’이 아니라 인적 자본을 확보, 활용, 축적하는 투자다. 실업급여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