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제주의 예멘 난민
1653년(효종 4년) 8월16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 한 척이 나가사키로 가던 중 제주도 인근에서 난파 당했다. 배에 탔던 64명 중 38명은 표류 끝에 제주도에 닿아 목숨을 건졌지만, 13년간 조선에 머물며 온갖 고초를 겪었다. 이들 중 일부는 우여곡절 끝에 로테르담으로 돌아가 1669년 《스페르베르호(號)의 불운한 항해 표류기》라는 생생한 난민 체험담을 남겼다. 이 기록을 남긴 이가 헨드릭 하멜이다.

보통 《하멜 표류기》라고 불리는 이 책은 난파 난민의 기록물이다. 감금, 태형(笞刑), 유형(流刑), 군역(軍役), 구걸 등 조선 땅에 머물면서 직접 경험한 온갖 풍상과 함께 그들이 만난 다양한 계층의 인물, 당시의 풍속과 풍물이 잘 묘사돼 있다. ‘사고 난민’의 극한적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인권이 고양돼 온 근대 이후에도 난민은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다. 옛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붕괴 이후 이 지역에 살던 유대인 난민들이 관심을 모았고, 유대인이 세운 이스라엘에서 밀려난 팔레스타인 유민들도 국제적 인권 관심사가 됐다. 패망한 옛 월남의 ‘보트 피플’도 유명하지만, 우리에게는 6·25 피란민의 상처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갈등과 분쟁 지역에서 어김없이 발생하는 게 난민이다. 1943년 UNRRA(유엔구제부흥사업국), 1947년 IRO(국제난민기구)에 이어 1950년부터는 UNHCR(유엔난민기구)이 활동 중이지만, 급증하는 난민들 처리에 역부족이다.

요즘의 난민은 대개 잘못된 정치의 산물이다. 난민의 처리 또한 민감한 정치 쟁점이 된다. ‘난민 포용’을 표방해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것도 난민정책 때문이다. 메르켈의 기독민주당과 연정 중인 기독사회당 대표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난민문제에서 강경한 자세를 취하면서 자칫 연정이 깨질 판이다. 지난해 독일에 망명을 신청한 난민이 22만 명에 달하면서 ‘사회적 뇌관’이 된 것이다. 2011년부터 계속돼온 시리아 내전에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도 난민이 대거 발생해 세계적으로 6200만 명에 달한다는 집계도 있다.

제주도에 몰려든 예멘 난민 처리가 관심사가 되면서 한국도 난민 유입 국가라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고 있다. 내전 현장을 탈출한 예멘 난민들은 주로 말레이시아를 거쳐 30일 무비자 체류 지역인 제주로 들어오고 있다. 재작년 처음으로 7명이 국제법상의 난민지위 신청을 한 데 이어 지난해 42명, 올 들어서는 5월까지 519명으로 신청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의 국내 수용 여부를 놓고 논쟁이 치열하다. 이런 것도 한국의 대외 인권정책이 국제적으로 평가받는 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인권문제는 어려운 과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