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김상조의 위험한 도박
고정관념, 편견 등을 버리면, 기업지배구조는 알면 알수록 함부로 말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보유 주식 수에 비례해 기업 지배권을 행사하는 ‘소유·지배 비례원칙’을 따르는 소유분산 기업이 더 이상 보편적인 기업구조가 아니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별로 형태는 다양하지만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한 가족기업의 역할을 보더라도, 소유집중 가족기업에서 전문경영인 기업으로 진화한다는 주장보다 소유분산 개념은 ‘이론적 신화’에 불과하다는 실증연구에 더 눈길이 간다.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를 낳는다는 지배력 강화 수단(CEM) 측면에서도 그렇다. 기업집단을 활용한 피라미드 소유구조, 상호출자, 순환출자 등은 많은 국가에서 볼 수 있고, 황금주, 차등의결권 등을 허용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소유분산 지배구조를 특징으로 한다고 알려진 미국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차등의결권 주식발행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혁신을 이끄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지배구조에서도 확인된다.

기업지배구조 차이는 그 나라의 문화·신뢰·법·정치·금융·노동 등 사회적 제도와 따로 떼어 논의하기 어렵다는 ‘경로 의존성’ 주장에 이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지배력 강화 수단과 관련해 이른바 ‘대리인 이론’ ‘소유·지배 괴리 이론’ 등에서 문제점을 제기하지만, 그런 기업이 글로벌 경쟁환경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를 단순히 기업의 지대추구 행위나 정치적 연관성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역사적·제도적 요인만으로도 “이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게 기업지배구조다. “‘베스트 프랙티스’도 믿지 말고 각자 살 길 찾아 나서라”고 할 정도로 기술적 파괴가 몰아치는 지금 같은 변혁기에는 특히 그렇다. 유감스럽게도 한국만 특정 대기업들을 겨냥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압박이 한창이다. 시간을 끌면 기업과 국민경제에 초래될 비용이 커진다는 게 김상조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김 위원장이 좋다고 하는 지배구조로 가면 기업도 우리 경제도 잘될 거라는 근거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여당의 지방선거 압승으로 공정위의 기업지배구조 압박이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려는 더해진다. 일련의 흐름이 김 위원장이 한성대 교수로 있던 2015년 11월30일 ‘재벌의 경영권 승계 관행,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란 주제의 토론회에서 했던 발언과 맥락이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당시 김 위원장은 “재벌 3세 시대의 총수일가는 CEO가 아니라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에서 그 역할을 찾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정부가 설정해놓은 지배구조 개편의 종착점일지 모른다.

경영권 승계를 비판하는 의견에는 공감할 부분도 있다. 그렇다고 오너 경영은 안 된다고 하면 그 대안은 무엇이냐는 과제가 남는다. 김 위원장은 이사회 제도를 말하지만 미국에서도 이사회에 의한 경영진 감시와 지배구조 문제 해결이 기대와는 다르다는 보고가 나오는 마당이다. 더구나 시장 자율, 노사관계 등에서 미국과는 전혀 다른 한국에서 이게 제대로 작동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이사회가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CEO 선정이 정부, 노조 등에 휘둘릴 위험성이 다분하다. 그렇게 해서 기업 성과가 떨어지고 결국 망하면 그땐 누가 책임지나. 교수는 논문이나 보고서 차원의 주장일 뿐이라고 둘러대고 정부는 정책 실패로 돌리면 그만이겠지만, 기업은 한번 망하면 끝장이다.

대커 켈트너 미국 UC버클리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요청을 하지만 강압적이 되고 주장을 펴지만 노골적이 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기업이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압박으로 겪는 스트레스와 불안, 수치심 등은 권력 남용을 경고하는 ‘무력감의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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