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빌 게이츠의 졸업선물 '사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2010년부터 매년 대학 졸업철인 5~6월에 특별한 책을 추천해왔다. 사회로 진출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미래의 꿈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그의 추천을 받은 책은 금세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2012년 출간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는 그의 추천을 받은 지 하루 만에 아마존 종합베스트셀러 2위로 치솟았다. 하버드대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쓴 이 책은 최근 몇 세기에 걸쳐 전 지구적으로 폭력과 빈곤이 줄고 평화와 풍요가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을 다각도로 입증했다. 게이츠는 당시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책”이라며 “졸업생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면 아마 이 책일 것”이라고 했다.

그가 올해는 진짜 책 선물에 나섰다. 지난 5일부터 블로그를 통해 미국의 모든 대학 졸업생에게 스웨덴 통계학자인 고(故) 한스 로슬링의 《사실(Factfulness)》을 전자책으로 배포하고 있다. 대학과 이메일 주소를 인증한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올 4월 출간된 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잘못 알고 있으며, 왜 세상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지 말해 주는 열 가지 이유’다.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의 숫자는 1800년대와 비교할 때 제로(0) 수준으로 떨어졌고, 전력·물 자급률이나 질병 면역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각종 통계와 그래프로 보여준다.

영문 제목 ‘팩트풀니스’는 저자가 만들어 낸 단어로 ‘강력한 사실을 바탕으로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파악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상을 선악이나 흑백논리로 나누려는 경향, 사건을 확대 해석하고 관점을 왜곡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이츠는 책의 한 구절인 ‘느린 변화도 변화는 변화다’를 인용하며 “극빈층은 지난 20년간 연평균 2.5%씩 줄었고, 시간이 지나면 더 줄어들 것”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그러면서 “세상을 명확하게 바라보는 법을 조언하는 이 책은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이들에게 유용한 통찰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긍정적인 미래관은 스티븐 핑커가 말한 ‘선한 천사’의 네 가지 요소와 닮았다. 남의 아픔을 느낄 줄 아는 ‘감정 이입’과 충동적 행동의 결과를 예상하고 절제하는 ‘자기 통제’, 인도주의 혁명을 이룬 ‘도덕 감각’, 자신만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성찰로 이끄는 ‘이성의 힘’이 그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이자 자선가인 그의 삶을 이끈 엔진도 이런 생각을 가능하게 한 ‘독서의 힘’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나를 키운 건 동네 도서관이었다.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