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수상한 음파'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리고성(城) 함락 얘기는 ‘음파 공격(sonic attacks)’의 효시로 회자된다. 제사장과 병사들이 6일간 성 주위를 돌고, 7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번을 돌면서 일제히 나팔을 불고 소리를 질렀더니 성이 무너졌다고 한다.

나치 독일은 이를 모티브로 삼아 본격적인 ‘음파 무기’를 고안했다. 커다란 포환 속에 메탄가스를 압축한 뒤 강력한 폭음으로 적을 패닉 상태에 빠뜨리는 ‘음파 대포’였다. 과학자들이 실험 도중 너무 끔찍하고 잔인하다며 생산을 중단하도록 할 만큼 무서운 무기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비살상(非殺傷)·방어용’이라는 명분에 힘입어 관련 기술이 고도화됐다. 미군이 이라크전 때 사용한 ‘장거리 음향기기(LRAD)’가 대표적이다. 이 무기는 화재경보기의 두 배에 해당하는 150데시벨(dB) 이상의 소리를 내 반경 270m 안의 적에게 강한 두통과 일시적인 착란을 일으켰다.

소말리아 해적 소탕에 사용한 ‘소리 대포’도 고막이 상할 정도의 굉음으로 해적들을 제압했다. 군중을 해산시키거나 적군을 상처 입히지 않고 생포할 때, 테러범들을 교란시킬 때도 이를 사용한다.

인간이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역대는 250~2000헤르츠(㎐)다. 음파 공격은 이 범위 밖의 초저음파나 초고음파로 뇌에 손상을 입히는 것이다. 동물도 예외가 아니다. 잠수함의 강력한 수중음파는 고래의 청각 이상을 초래한다. 음파탐지기와 선박 엔진, 석유탐사 장비 등의 바닷속 소음으로 매년 25만여 마리의 고래가 청력을 상실한다는 분석도 있다.

2016년에는 쿠바 주재 미국 외교관들이 정체불명의 소리 때문에 청력 손실과 구토, 두통 증상을 호소했다. 검사 결과 50여 명이 외상성 뇌손상과 청력 상실 진단을 받았다. 결국 외교 문제로 번져 트럼프 대통령이 24명을 귀국시키고, 자국 외교관 보호 소홀을 이유로 미국주재 쿠바 외교관 15명을 추방했다.

최근에는 중국 광저우의 미국 영사관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미국은 음파 공격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지만 아직 증거가 없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음파 기술은 쓰기에 따라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한다. 공항 주변이나 농장에서는 특정 음파로 새를 쫓는 조류퇴치에 활용되고, 전장이나 테러·첩보 현장에서는 치명적인 무기로 악용된다.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디에선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진저리를 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