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光州시장 당선자가 꼭 이루실 일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싱겁기 짝이 없을 선거다. 관심은 없지만 한 곳, 광주광역시장에 누가 당선될지 궁금하다. 부탁이 있어서다.

후임은 전임의 흔적부터 지운다고 한다. 하지만 새 시장께선 제발 그러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 다른 건 모르겠다. 윤장현 현 시장의 ‘광주형 일자리’ 정책만큼은 고스란히 넘겨받아 온 힘을 쏟아 성사시켜 주시기 바란다.

시가 세우는 자동차공장이다. 업계 절반의 임금으로 연산 10만 대 규모의 자동차공장을 굴려 1만2000명 규모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터무니없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터무니없는 얘기를 현실로 바꿔 놓을 슈퍼맨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지 공장을 세우고 일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한국 제조업의 활로를 트는 일이고 나라 경제의 고질병을 치료하는 일이다. 천재일우가 광주시장 손에 달려 있다. 누구도 손대지 못한 일이다.

시장께서 취임하면 우선 가볼 곳이 있다. 자동차공장이다. 그렇다고 현대·기아차 공장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 낮은 공장을 꼭 가봐야 알겠는가. 임금은 도요타나 폭스바겐보다 높지만 생산성은 최악이다. 그런데도 늘 파업이다. 그러고도 강성 노조 탓에 어쩌지 못하는 공장이다.

시장께서 가볼 곳은 해외 공장이다. 한 곳을 추천하라면 바야돌리드 공장을 꼽겠다. 프랑스 르노의 스페인 현지 공장이다.

스페인 자동차산업은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EU)에 편입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고비용-저생산성 구조 탓이다. 르노도 바야돌리드 공장을 동유럽으로 옮기려 했다. 임금은 높고 생산성은 낮은, 현대·기아차 수준이었다. 노조는 시도 때도 없이 파업이었고.

폐쇄 직전에 몰려서야 노조가 움직였다. 스스로 임금을 동결했고, 초과근무 수당을 반납했다. 변형 근로에도 적극 동참했다. 더 이상 파업과 시위는 없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에 나섰고 르노도 신규 차량을 투입했다. 고용 확대는 물론이다.

지금 바야돌리드 공장이 차 한 대를 만들어 내는 시간은 16.2시간이다. 생산성 평가에 권위를 갖고 있는 하버리포트가 세계 1위로 평가한 공장이다. 현대차 국내 공장보다 무려 10시간 짧다. 게다가 스페인의 시간당 인건비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의 73%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 결과다. 스페인은 자체 메이커 없이도 유럽 2위, 세계 8위 자동차 생산국이 됐다. 완성차와 부품이 전체 수출의 17%를 차지한다. 구조개혁과 노동개혁으로 나라를 살려 낸 자동차산업이다. 시장께서 왜 ‘광주형 자동차공장’이 필요한지를 절감하시리라.

들러 보실 곳이 또 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마그나 슈타이어 공장이다. 그런 브랜드를 들어본 적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매년 20만 대의 자동차가 생산된다. 경차나 만드는 수준이 아니다. 벤츠의 G클래스, BMW 5시리즈 같은 고급 차량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완성차 메이커들이 시설 투자 리스크를 줄이고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틈새를 공략하는 공장이다. 노동 조건은 한없이 유연하다. 어제 벤츠를 조립한 근로자들이 오늘은 BMW를 만든다. 시장께서 광주 공장의 벤치마크로 삼아야 할 공장이다.

국내에 22년 만에 들어서는 완성차 공장이라고 한다. 국내 환경이 조금이라도 괜찮았다면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이 이토록 가파르게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비정상적인 노사관계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공장 자체가 공기업이다. 공기업 경영이 어떤지는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도 오죽하면 현대차가 참여 의사를 밝혔겠는가. 공기업 공장이 지금보다 훨씬 낫다는 의미일 것이다.

생산시설 포화 탓에 신규 공장 건설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렇지 않다. 문제는 생산시설의 과다가 아니라 고임금과 저생산성, 비이성적 노사관계다. 현대차 노조가 반발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럴 자격이 없다. 스스로의 태도부터 바꿀 일이다.

물론 공장이 들어서도 걸림돌은 남는다. 최악의 노동관련법이다. 그렇다고 시장께서 굳이 국회와 정부에 법 개정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니다. 공장만 잘 돌리면 국회나 정부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만 된다면 한국 산업은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역사에 남을 일이다.

실현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 그래도 실현되길 바란다. 새 광주시장께서 꼭 이뤄 주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