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北 회담에 애태우는 일본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프랑스는 유럽의 헤게모니에 근접한 적이 없었다. 국력이 약한 프랑스가 유럽 정치의 운전석에 앉은 것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사실상 유럽의 주인이었던 영국과 독일이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2년 초 독일 뮌헨에서 아시아 정치·외교 전문가인 고트프리트칼 킨더만 뮌헨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나눈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이른바 ‘운전자론’ 관련 뉴스를 접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도록 다리를 놓고, 취소될 뻔한 회담을 우여곡절 끝에 되살리는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트럼프에 매달리는 아베

주변 강국인 일본과 중국,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행여라도 ‘패싱(배제)될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낯선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의문도 떠오른다. 한때 한반도를 나눠 먹기 대상으로 삼았던 주변 강대국들이 앞으로도 얌전하게 관망만 하고 있을 것인지, 한국의 ‘운전석 탑승’을 계속 용인할 것인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현재 ‘패싱 불안’이 가장 큰 나라는 일본이다. 당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오는 12일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7일 미국을 방문해 미·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 8~9일로 예정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앞서 따로 일정을 잡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문제 등 ‘일본의 요구’를 설명하고 북한의 상습적인 ‘시간 벌기 전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뒤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요코타 미군기지를 방문하는 형식으로 추가 미·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본은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베트남, 호주 등에도 “북한에 최대의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도 싱가포르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북한이) 대화에 응한 것만 가지고 대가를 제공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등 ‘존재감’ 과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재팬 패싱' 바람직하지 않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중국은 6·25전쟁 당사자이자 핵 보유국으로 발언권과 실력이 있지만, 일본은 발언권도 실력도 없는 존재”(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라는 시각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한국이 모는 자동차에 군말 없이 타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지난 20여년간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다. 도처에 예상치 못한 걸림돌도 즐비하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 내용만 생각해도 골치가 아파 오는데,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끼어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반도에 실질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을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다. ‘시끄러운 승객’을 그대로 두면 안전 운전을 보장받을 수도 없다. 미·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한국은 이들 승객이 ‘북핵 완전 폐기’라는 국가적 목표에 협력할 수 있도록 외교적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특히 북핵 폐기를 대가로 한국과 함께 경제적 지원과 보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과의 긴밀한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실리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파심에 하는 얘기지만, 혹여 감정적으로 일본을 패싱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