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에 이어 어제 한국GM 군산공장까지 문을 닫았다. 한때 근로자들로 붐비던 소룡동 원룸촌에는 인적이 뚝 끊겼다. 너도나도 새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바람에 이삿짐센터만 ‘슬픈 호황’을 누리고 있다.

[천자 칼럼] 아! 군산
1899년 개항 이후 호남 경제의 중심지로 이름을 날렸던 항구도시가 눈물로 얼룩지고 있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군산은 예부터 쌀의 집산지였다. 서쪽으로는 바다로 트이고 동과 남으로는 만경강을 넘어 호남평야로 이어지는 곳이어서 쌀의 최대 수출 창구이기도 했다.

고려 때부터 세금으로 거둔 쌀을 개경으로 실어가기 위한 조창이 이곳에 있었다. 그 쌀을 탐낸 왜구의 침입도 많았다. 고려 말 우왕 6년에 최무선이 화통과 화약을 써서 왜구 배 500여 척을 무찔렀던 진포해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호남과 충청 일대의 쌀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일본 공업 제품을 수입하던 무역 중심지였다. 1930년대 미곡 선물거래를 담당했던 군산미곡취인소(쌀 거래소)가 있었고, 쌀을 보관하던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도 여기에 있었다.

군산 출신 작가 채만식의 소설 《탁류(濁流)》는 쌀과 관련한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다. 금강 물길이 서해로 합류하는 군산항의 째보선창 주변은 당시 길에 떨어진 쌀알갱이들로 사방이 싸라기눈 내린 풍경처럼 희었다고 한다. 선창 인근의 옛 군산세관은 1990년대까지 세관 용도로 사용됐다. 소설 속 고태수가 다니던 조선은행은 옛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오랫동안 쓰였다.

광복 이후 잠시 주춤했던 군산 경제는 군산국가산업단지와 군장산업단지 조성으로 한때 활기를 찾았다.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인구도 27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잇단 공장 폐쇄로 도시 전체가 신음하고 있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만금사업으로 새로 생기는 육지 면적이 283㎢나 된다. 서울시 크기의 절반에 가깝다. 새만금복합리조트까지 개발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0조원 규모의 새만금복합리조트가 건설되면 5년간 23조원 이상의 생산유발 효과와 23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전망이다.

역사문화유산이 많은 군산의 관광산업도 앞날이 밝다. 군산 근대문화유산 역사지구 방문자는 2015년 82만 명에서 지난해 366만 명으로 2년 새 5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로 어려움을 겪는 협력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은행들도 발 벗고 나서는 중이다.

고교 야구에서 ‘역전의 명수’로 이름을 떨쳤던 군산상고의 ‘야구 신화’처럼 군산 경제가 멋지게 역전의 기쁨을 만끽하길 응원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