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4차산업혁명특위 18인의 반란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이 의도했던 건 의회를 다양한 사업에 종사하다가 잠시 쉬고 싶은 사람들로 채우는 것이었다. 상원과 하원의 의원들은 원래 경제활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이고 임기가 다하면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경제학자 에드먼드 펠프스의 《대번영의 조건》에 나오는 구절이다. 불행히도 지금은 로펌 말고 기업에서 일을 해 본 의원이 드물다는 지적이다. 펠프스는 대안으로 의원들이 ‘혁신’을 이해할 배경지식을 갖출 것을 제안한다.

헤럴드 에번스의 《미국을 만든 사람들》, 찰스 모리스의 《혁신의 새벽》,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경쟁은 발견하는 과정》, 리처드 넬슨의 《의학 지식의 발전 과정》, 아마르 비데의 《모험하는 경제》, 맨슈어 올슨의 《국가의 흥망성쇠》. 최소한 이런 책을 읽고 고민한 의원이면 규제법안을 볼 때마다 ‘경제의 역동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의문을 떠올리지 않겠느냐는 기대에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역동성’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을 것이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국가’인 이유도 규제로 경제적 역동성을 상실하면 어떤 무서운 결과가 초래되는지 끊임없이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가 6개월간의 활동을 끝내며 105개 정책 권고안, 47개 입법 권고안을 내놨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원성을 사고 있는 개인정보 보호 규제개혁을 ‘특별권고’ 형태로 채택했고, 크라우드 펀딩, 인수합병(M&A) 등의 규제완화를 권고했다. 정부가 금지한 암호화폐공개(ICO)를 허용하라는 권고도 들어있다. 정쟁으로 겉돌기 일쑤였던 국회에서 4차산업혁명특위가 모처럼 밥값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쉽게도 ‘특위 18인의 반란’은 여기까지다. 권고는 아무리 많아도 권고일 뿐이다. ‘오세훈 정치자금법·선거법’이란 정치관계법 개정안 통과를 이끌어낸 16대 국회 마지막 정치개혁특위의 전설엔 이르지 못했다. 특위 위원들은 여야 합의로 나온 권고인 만큼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입법 활동에 나서겠다고 다짐하지만, 정치지형이란 벽이 만만치 않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규제혁신 5법’만 봐도 그렇다. 여당은 ‘규제 샌드박스’를 말하지만 개별 법률, 특정 분야로 한정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을 위축시키는 ‘무과실 배상책임제’라는 독소조항도 논란이다. 지역특구법 개정안은 앞 정부의 ‘규제 프리존법’보다 후퇴했다는 평가다. 생명·안전·보건·복지·환경·노동규제는 손도 대지 말라니 무슨 규제를 완화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혁신성장 점검회의’에서 “경쟁국은 뛰어가는데 우리는 걸어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과거 같으면 야당이 발목을 잡아 그렇다고 하겠지만, 지금은 여당이 야당 시절 규제개혁을 반대하던 활동적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속도가 안 나는 희한한 풍경이다.

김대중 정부는 비즈니스가 자유로운 ‘경제자유구역법’을 제정했고, 노무현 정부는 중국이 불편해했다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를 부르짖었다.

두 정부의 시각으로 보면 지금 정부가 말하는 일자리, 최저임금 인상 등 소위 ‘소득주도 성장’은 새로운 비즈니스(일거리) 창출 없이는 안 되는 것이고, 혁신성장은 꿈과 희망의 새로운 장사판을 벌이는 쪽으로 질주하는 것이라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는 여당이 갑자기 경제적 무지에 빠진 게 아니라면 새로운 비즈니스의 물꼬를 터주는 규제개혁을 왜 주저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여당인 민주당이 생각을 바꾸면 ‘여야 규제개혁 대타협’이 어려울 것도 없다. 더 나은 개혁이 있다면 다른 정당의 것이라도 사는 게 협치다. “앉아서 죽을 순 없다. 우리 대표를 국회로 보내자”는 스타트업이 많다. ‘여의도를 점령하라’는 분노의 물결을 보고 싶지 않다면 특위의 반란이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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