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종전선언에 도사린 위험들
4월27일 남북한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때만 해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같이 가는 것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았지만, 이후에 전개된 상황을 보면 정전선언과 평화협정은 별개 사안으로 추진되는 것이 분명해졌다.

5월2일에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종전선언은 “전쟁을 끝내고 적대 관계를 해소한다는 정치적 선언”으로 중국이 주체가 될 필요가 없지만 평화협정 체결에는 중국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밝힘으로써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별개로 보고 있음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5월26일 남북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이 추진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함으로써 정부가 평화협정에 앞서 종전선언을 꾀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통상, 전쟁은 평화협정으로 끝난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의 일부로 들어간다. 물론 평화협정 없이 전쟁을 끝낸 예가 없지는 않지만 이 경우도 평화협정이라는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협정에 상응하는 국제사회의 보증 등을 통해 적대행위의 종식이 담보됐다.

종전은 문자 그대로 적대행위의 종식이기 때문에 말로만 하는 선언은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 위협이 완전히 제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왜 굳이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을 하자는 것일까. 평화를 담보할 장치가 미처 마련되기도 전에 종전이 됐다고 선언부터 하는 것은 왜일까.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의 단초는 종전선언이 남북 정상 합의문에 포함된 게 판문점 선언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있었던 2007년 10·4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도 ‘3자 또는 4자 정상의 종전선언을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간다’는 내용이 있다. 물론 종전선언은 불발로 그쳤다. 우리 정부 내에서는 송민순 당시 외교부 장관이 “종전을 선언하려면 여러 조치와 정치·군사·법적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며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 또한 “북핵이 폐기된다면 평화협정 체결, 종전이 가능하다”며 평화협정과 분리된 종전선언에 반대했다. 판문점 선언에 동일한 종전선언이 또다시 포함된 것을 보면 아마도 ‘선(先)종전선언, 후(後)평화협정’은 북한 측에서 요구한 것일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종전선언부터 하자는 북한의 숨은 의도는 무엇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받아들이지 않아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하면 북한의 노림수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종전을 선언하면 미국의 군사적 압박과 개입은 아무래도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한 터에 비상한 이유가 없는 한 새로운 전쟁을 의미하는 군사적 옵션을 선택하기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레버리지(지렛대)는 줄어들게 되고 그만큼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길은 멀어진다.

둘째, 유엔사령부 해체, 미군 철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폐지 등의 요구가 뒤따를 공산도 크다. 유엔사령부는 6·25전쟁 때문에 생긴 조직이고 미군도 유엔군 자격으로 주둔하고 있다. 종전이 선언되면 문정인 외교안보특보의 지적대로 존재 이유가 약화될 것이다. NLL도 유엔사령부가 그은 선이기 때문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종전선언은 정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상징적 의미만 있는 정치적 선언에 그치는 게 아니다. 성사 여부도 불확실한 평화협정을 상정하고 미리 종전부터 선언한다면 자칫 북한 노림수에 걸려들 공산이 다분하다.

오리무중 상태에서는 그저 원칙대로 가는 것이 옳다. 비핵화와 군축 등을 통해 북한의 위협을 제거한 후 평화협정을 통해 종전으로 가야 한다. 북한이 약속을 어겼다고 해서 다시 개전을 선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종전선언부터 하는 것은 북한이 바라는 바로, 결코 정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