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천자 칼럼] '슬로(slow) 건축'

미국 뉴욕 맨해튼의 컬럼비아대 옆에 있는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은 127년째 공사 중이다. 미국 성공회가 1892년 첫 삽을 뜬 뒤로 2050년 완공 기일까지 33년이 남았다. 그래서 ‘미완의 세인트 존’으로 불린다. 19세기 말부터 21세기까지 158년에 걸친 공사가 마무리되면 실내 면적 1만1200㎡의 세계 최대 성당이 된다.

이보다 먼저 착공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는 137년째 건축 중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30세 때인 1882년부터 74세로 타계한 1926년까지 40년을 바쳤고, 그의 사후 100주년인 2026년에야 완공될 예정이다. 버팀목 없는 곡면 설계의 ‘느린 방식’으로 위대한 성당을 짓겠다는 그의 ‘슬로(slow) 건축’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가우디는 성당의 중앙 첨탑 높이를 170m로 설계했다. 완공되면 독일 울름 대성당(161m)을 넘는 세계 최고(最高) 기록이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다.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가장 높은 몬주익 언덕을 넘어서는 것은 신을 넘보는 것과 같다는 가우디의 겸손한 건축 이념이 반영돼 있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시에나 대성당은 800년이나 미완인 채로 남아 있다. 경쟁 도시 피렌체보다 더 큰 성당을 짓기 위해 1229년 착공했다가 페스트 창궐과 재정 악화로 중단돼 지금은 거대한 벽체만 남아 있다. 종교 건축 말고도 슬로 건축의 사례는 많다.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을 완성하는 데 50년이 걸렸다.

한때는 짧은 기간에 높은 건물을 짓는 속도 경쟁이 벌어졌다. 1973년 세계무역센터가 생기기 전까지 40여 년간 ‘마천루의 아버지’로 불린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102층 공사를 11개월 만에 끝냈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패스트트랙(fast track) 공법 덕분이었다. 이는 2002년 상암 월드컵경기장 공사에도 적용됐다.

최근 건축계가 다시 ‘슬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서울 홍대 앞 서교호텔이 부티크호텔인 라이즈(RYSE)호텔로 거듭나는 데에는 7년이 걸렸다. 지난달 완공한 이 호텔은 재건축에 가까운 리모델링 과정에도 심혈을 기울였지만, 홍익대 주변의 ‘젊은 문화’와 인근 상권까지 고려하느라 기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2011년부터 이 호텔 리모델링을 이끈 한국계 미국인 건축가 스티븐 송 SCAAA 대표의 말처럼 과거에는 빨리, 높이, 크게 짓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지금은 ‘천천히 오래 스며드는 건축 문화’가 더 중요해졌다. 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산업 역사도 70년이 넘었다.

세계 곳곳의 ‘느린 건축’ 현장을 보면서 가우디의 명언을 다시 떠올려 본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천천히 자라날 것이다. 오랫동안 살아남을 운명을 지닌 모든 것은 그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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