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부터 시행하는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간판 기업들은 인력을 늘리기보다는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삼성전자가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재량근로제 도입계획을 밝힌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무엇보다도 현장 혼란과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1~3년 걸리던 제품개발 주기를 부득이 종전보다 3~6개월 늘려 잡아야 할 형편이라고 한다. 휴대폰과 TV처럼 제품주기가 짧고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는 자칫 ‘속도 경쟁’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 건설, 플랜트 같이 주 52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업종의 기업들은 ‘멘붕’ 상태다. 어디까지를 근로시간으로 볼지 모호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14만~18만 명의 일자리가 생기고 과로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던 정부의 기대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모습이다. 이 같은 간극은 한경이 마켓비전컨설팅그룹에 의뢰해 조사한 ‘주52시간근로제 대비 상황’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응답기업 300곳 중 “신규 고용에 나서겠다”는 곳은 10.3%에 그쳤다. 해고가 어려워지면서 어떻게든 신규 채용은 피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직원의 실질임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이 과반(50.7%)에 달했다.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예고하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장 생태계와 기업 현실에 눈을 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낙관론을 폈다. 300인 이상 기업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은 모든 기업에 적잖은 부담이다. 큰 기업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에는 더 큰 충격이 온다.

시장과 현장을 무시한 정부의 ‘정책 독주’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지난 1년간의 소득주도 성장 실험이 잘 보여준다. 올해 1분기 소득하위 20% 가계소득이 역대 최대로 감소해 분배지표가 최악을 기록했다. 하위 20% 소득 중 이전소득이 근로소득을 처음으로 앞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대통령 주재 경제점검회의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을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문 대통령이 “소득분배 악화는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했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청와대 참모 중심으로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정책실패에 대해 핑곗거리만 찾은 회의가 되고 말았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말란 보장이 없다. 문 대통령이 “필요한 경우 유연하게 수정 보완하라”고 했지만, 얼마나 개선이 이뤄질지 미지수다. 최근 발표된 10대 경제지표 중 9개가 악화됐다. 연일 하락하는 증권시장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기업들의 신음소리와 시장 경고음이 점점 커지는데 정부만 못 듣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