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새로운 시대를 '코딩'하는 자들
영화 ‘청년 마르크스’를 봤다. 카를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다룬 점이 흥미롭다. 이 영화를 보고 다시 한 번 확인한 점은 역시 ‘글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젊은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가 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 생각난다. 글은, 책은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꿀’ 힘을 가진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만나게 한 것도 결국 책, 즉 글이다. 서로가 글로써 서로를 존경하던 차에 둘은 만나서 같이 글을 쓴다.

마르크스가 좀 더 철학적이고 개념적이지만 철저히 유물론에 기반한 과학적 입장을 견지하려 했다면 엥겔스는 물질적으로는 부르주아였지만 그런 삶이 오히려 실증주의적 주장을 펴는 토대가 됐다. 거기에다 메리 번스와의 만남은 노동계급의 참상을 실증적으로 기술하는 제1 조건을 만들어줬다.

인쇄술이 발달하던 1차 산업혁명기에, 글은 다른 어떤 무엇보다 영향력 있는 세계 변혁의 도구였다. 음악이 악보를 통해 발달하면서 루트비히 판 베토벤 같은 사람은 지금의 마이클 잭슨이 누렸던 명성과 지위를 향유할 수 있었다. 글이 힘을 갖기 전에는 말이 힘을 가졌을 것이다. 예수, 석가모니, 마호메트 모두 ‘말을 한 사람’이다. 말로써 세상을 변혁시킨 분들이다. 수메르 문명 이전, 사람들은 말이 아니라 그냥 순수한 힘, 즉 폭력으로 세상을 대했을 것이다.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고…. 마치 고릴라나 침팬지 사회를 보는 것과 비슷했을 것이다.

폭력과 말, 글에 이어 전기는 대량 생산으로 세상을 변혁시켰다. 물리적 제품이 전기에너지에 의해 대량 생산되는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더 이상 글을 잘 쓰는 사람이 힘을 가지기 어려워졌다. 2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글이 아니라 제품이 존경받았다.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잡스는 3차 산업혁명을 열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는 철저히 2차 산업혁명, 즉 제조업 중심 인물이다.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 중 그나마 온라인과 밀접한 앱스토어는 잡스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다시 ‘쓰는 사람’이 세상을 변혁시켰다. 인문·사회·자연과학적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코드, 즉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변혁시켰고 힘과 부를 거머쥐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그 시대를 열었고,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한국에서는 아래아한글을 개발한 우원식, 검색엔진 첫눈을 개발한 장병규, 엔씨소프트의 김택진과 같은 코더(coder)가 3차 산업혁명의 주역이다. 다만 이들에게서는 사회 변혁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변혁의 도구로서의 글, 코드가 아니라 체제 지속과 확장의 도구로서의 코드다.

이에 반해 계속 탄압받고 적대시당하면서 코딩을 한 그룹들이 있다. 이들은 21세기 마르크스, 엥겔스들이다. 이들은 숨어 살기도 하고 학벌도 잘 내세우지 않고 기존 자본가에게 손을 내밀지도 않는다. 나카모토 사토시, 비탈 부테린 등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글을 쓰는 자들이다. 그들의 코드는 변혁을 꿈꾼다. 아마 마르크스나 엥겔스처럼 결국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불온시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열광하는 젊은이들은 새로운 운동 방법인 가상화폐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라는 방식으로 세력의 교체를 꿈꾼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ICO를 금지하고 있다. 창업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대기업들도 이 분야 일을 하려면 할 수 없이 해외에 법인을 만들고 해외에서 ICO를 해야 한다. 진영 논리와 우물 안에 갇힌 일부 지식인은 눈과 귀를 닫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또는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혁명은 새롭게 쓰는 자들에 의해 진행될 것이다. 그것은 좀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쓰고 코딩하는 자들, 그리고 세계가 스스로 말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제조하고 코딩하는 자들에 의해 진행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