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두리 양식장과 금배지
오늘은 30년간 일했던 기업과 달라도 한참 다른 국회에 들어온 지 딱 2년이 되는 날이다. “얼락녹을락 살아라” 하셨다는, 얼굴은 뵌 적 없는 친조모님의 말씀을 늘 생각하며 기업에서 일했다. 얼음이 얼 때는 같이 어는 듯해야 하고 얼음이 녹을 때는 같이 녹는 듯해야 한다는 말씀인데,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행동을 지혜롭고 균형 있게 하라는 뜻이다.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을 때의 여러 감정 중 나를 압도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국민이 주신 국회의원의 권한과 책임을 알아갈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국민만을 바라보고 국가에 봉사하며 보탬이 되는 진짜 ‘국민 대표’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각오는 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은 국회였다. 20대 국회 개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헌정 사상 초유의 일들이 연이어 터졌고 생산적인 국정 운영은 밀려난 채 정쟁이 정국을 휩쓸었다. 내가 아는 여야 국회의원 한 분 한 분은 모두 소신 있고, 사명감 넘치고, 협치에 대한 의지가 강한 분들이었다. 그러나 당론이 부딪칠 때면 국회는 순식간에 가두리 양식장처럼 변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부담과 두려움을 잊는 유일한 방법은 가두리 양식장에 빠지지 않고 내게 주어진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었다. 현장과 국회를 잇는 통로로, 관련 산업 현장의 혁신을 발목 잡고 있는 규제를 없애고 정보통신기술(ICT)과 국민의 삶을 연계하기 위한 방안을 현장에서 듣고 해결하고자 했다.

문턱에 걸린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타 부처 장관과 여야 의원들까지 쫓아다니며 설득하고, 국정감사 기간엔 보좌진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부지런히 현장을 누볐다. 여야 비례대표 1번이 의기투합해 국회 포럼을 만들어 국민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보편적 인식 확산을 도우려고 했다. 간사를 맡은 국회 4차산업혁명특위에선 여야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 개인정보 활용에 관한 의미 있는 권고안을 마련했다.

지난주에는 국회사무처가 선정한 입법·정책개발 우수 국회의원상을 받았다. 잠깐이라도 그간의 의정활동에 대한 격려를 받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국민의 신뢰를 받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는 금배지가 천근만근 무겁고,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할까봐 항상 두렵다. 한없이 부족한 내게 주어진 이 막중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항상 권한을 경계하고 책임의 무게를 느끼며 겸손히 국민을 위해 일 한다면, 서슬 퍼런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가두리 양식장에 빠지지 않고, 두려움과 감사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2년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