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노벨상과 브레이크스루賞
다이너마이트 발명가인 스웨덴 기업가 알프레드 노벨. 그가 55세 때인 1888년 자신의 부고 기사를 봤다. 형의 이름과 혼동한 신문사의 실수였다. 그는 “사람을 더 많이 죽이는 방법을 개발한 ‘죽음의 상인’이 사망했다”는 기사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잖아도 다이너마이트의 무기화에 심기가 불편했던 그는 자신의 유산으로 노벨상을 제정하라고 유언했다.

1901년부터 ‘인류 문명 발달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어지고 있는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6개 분야에 상금 900만 스웨덴크로나(약 100만달러·11억원) 안팎이다.

노벨상 출범 후 111년이 지난 2012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IT(정보기술) 창업투자로 갑부가 된 유리 밀너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등과 머리를 맞댔다. 2009년 페이스북에 투자한 2억달러로 40억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등 투자 귀재로 이름난 그는 IT기업가들과 손잡고 ‘브레이크스루상’을 제정했다.

‘실리콘밸리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 상은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돌파구)라는 말처럼 기초물리학, 생명과학, 수학 분야에서 한계를 돌파한 연구자에게 시상한다. 상금은 약 300만달러(약 33억원)로 노벨상의 세 배에 이른다.

상을 운영하는 브레이크스루재단은 인류의 상상력을 태양계 바깥으로 확장하는 연구도 지원하고 있다. 3만 년 걸리는 우주 항해를 20년 만에 주파할 우주돛단배(태양광 우주선) 건조사업인 ‘브레이크스루 스타샷 프로젝트’, 외계 행성을 찾는 ‘브레이크스루 워치’, 태양계 바깥의 생명체 소리를 측정하는 ‘브레이크스루 리슨’ 사업이 그런 예다.

노벨상이 죽은 사람의 재산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브레이크스루상은 산 사람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노벨상은 인류에 공헌한 사람의 평생 업적을 평가하는 과거보상형, 브레이크상은 될성부른 과학자를 지원해 더 큰 결과물을 내도록 돕는 미래투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북돋는다는 점에서는 둘이 닮았다. 노벨은 “1년에 1000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중 하나만 쓸모 있다고 해도 만족한다”며 355개의 특허를 땄다. 유리 밀너도 러시아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미국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딴 뒤 세계적인 투자사 DST글로벌을 창업했다. 최초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에서 이름을 따올 정도로 과학에 대한 애정이 깊은 집안 출신이다.

브레이크스루재단의 피트 워든 이사장이 한국에 온다. 오는 31일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하는 ‘스트롱코리아 포럼’에서 기조강연한다. ‘꿈과 아이디어를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할 것인가’라는 주제부터 솔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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