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우울증 약, 먹어도 될까
아직 정신건강의학과는 낯설다. 국민이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개명(改名)할 정도니 말이다. 낯선 이유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배가 아프고 열이 나면 내과를 찾듯이, 마음이 아프고 우울하면 당연히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야 한다. 물론 과거에는 정신에 문제가 있으면 천벌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고, 정신적 고통은 열등감의 산물이라 믿었던 적도 있다. 원인을 오해하고 있었으니 병원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간신히 오해를 풀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지만 이번에는 치료 과정이 생각과 달라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과연 치료가 가능한가?

우울증을 예로 들어보자. 진료를 시작하면 언제부터 왜 우울했는지, 증상은 어떤지, 그 결과로 어떤 고통이 있는지 등 자세하게 상담한다. 심지어 취미가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한다. 이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원인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보다 심층에 있는 원인을 찾기 위해 심리검사를 권하기도 하는데 거기까지도 수긍이 간다.

그런데 상담이 끝나고 진단의 틀이 잡히면 대뜸 약물을 권유한다. 현대의학에서 가장 보편적인 치료 수단이 투약(投藥)이니만큼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의심이 든다. ‘우울한 원인이 따로 있는데 약을 먹고 좋아질 수 있을까? 먹고살기가 어려워서, 상사와의 갈등으로, 남편을 사별한 때문에 생긴 병인데 약을 먹으면 치료가 된다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치료가 된다. 달리기를 하다가 발목을 접질려 염증이 생겼을 때 항염증약을 먹고 부기와 통증이 사라지는 것처럼 항우울약물을 먹으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긴 불면증,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한 분노, 상실감으로 인한 우울한 기분이 사라진다.

의학적 설명을 하면 이렇다. 우리의 뇌는 외부 스트레스가 무엇이든 거의 일정하게 반응한다. 개인적 경험과 기질에 따라 차이가 다소 나기는 하지만 방어하기 힘든 자극이 생기면 뇌는 일단 우울해진다. 우울한 기분은 대뇌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로 생긴다. 세로토닌이니 노르에피네프린이니 하는 것이 모두 신경전달물질이다. 정상적으로는 이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고, 흡수하고, 분해하는 과정이 균형 있게 지속돼야 하는데, 이 균형이 깨지면 정신적 고통이 되고 만다.

누구든 정상적인 뇌 기능을 갖고 있다면 우울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우울한 기분이 몇 날 며칠 가지는 않는다. 고작 한두 시간, 길어봤자 반나절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잠시 우울해졌던 뇌가 스스로 균형 잡힌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우울해졌던 뇌가 정상적인 뇌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랜 기간 불균형 상태로 머무는 것이 바로 ‘우울증’이란 병이다. 대뇌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변화가 지속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제는 왜 약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약물은 대뇌 신경전달물질 체계를 정상으로 만들어준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이 정신과 약물일 정도로 가장 ‘핫’한 시절이라 부작용 염려는 접어도 좋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 불면증과 분노와 우울한 기분이 정상으로 돌아선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의문이 들 것이다. 과연 장사는 계속 어렵고, 상사는 점점 더 괴롭히고, 세상을 떠난 남편이 돌아올 수 없는데도, 우울증은 치료될 수 있을까.

그럼 거꾸로 물어보자. ‘접질린 발목으로 달리기를 계속 할 수 있나?’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우울 증상을 치료해야 더 열심히 일하거나 뭔가 다른 궁리를 할 수 있다. 회사를 떠나든가 상사와 ‘맞짱’을 뜨려 해도 주눅이 들어있으면 불가능하다. 상실이란 것은 누구나 겪고 이겨내야 할 삶의 과제인데 언제까지 슬퍼만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의사마다 다르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치료는 증상의 단순한 완화가 아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원인을 찾아서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그렇지 못하다면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한 방어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치료가 끝난다.

모든 정신적 고통에 약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또 약물치료만으로는 완전한 삶을 보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 진단되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인 약물치료를 미룰 이유가 없다. 뇌가 바뀌어야 행복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