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가 노동계와 함께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국회가 아니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같은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경총이 노동계와 야합했다”고 비난했다. ‘노동계 2중대’, ‘배신자’라는 힐난까지 쏟아지자 경총은 하루 만에 주장을 철회했다.

외견상 수많은 기업의 운명이 달린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놓고 경제단체들이 엇박자를 낸 셈이지만, 기업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진작 포함시켰어야 할 것들을 방치하고 있다가 뒤늦게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에는 인건비 부담을 주고, 근로자들에게는 정규 급여와 다를 게 없는 상여금과 교통비 숙식지원금 등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기업의 경영환경을 뒤흔드는 여러 조치가 시행됐다. 모두가 정부 내에서조차 ‘속도조절론’이 나올 정도로 전격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과거 노사 간 균형 속에서 정부가 정책을 협의하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친노동계 성향을 보인 점도 있지만, 경제단체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기업하지 말라는 얘기”라는 등 기업들의 반발과 하소연이 쏟아졌지만, 경제단체를 거치면 형식적인 성명서 발표나 보여주기식 토론회로 희석되기 일쑤였다.

최저임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많은 기업인은 ‘경제단체의 안이한 태도’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빌미를 줬다고 본다. 지난해 7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 올해 최저임금은 16.4% 오른 시급 7530원이다. 노동계가 제시한 안(案)이 투표로 확정됐다. 당시 사용자 측이 제시한 안은 12.8% 인상된 시급 7300원이었다. 당시 소상공인 대표위원들은 “노동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두 자릿수 인상안을 제시해 공익위원들이 노동계 안을 채택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게 했다”며 다른 사용자위원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실수를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에서 만회해야 했지만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불거진 경총 사건을 보면, 경제단체들은 주장해야 할 내용에 대한 합의안조차 없는 듯하다.

경제단체들은 7월1일부터 시작하는 근로시간 단축문제에 대해서도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기업들은 지금도 큰 혼란 속에서 허둥대고 있는데 경제단체들은 ‘탄력근로제 적용 확대’ 요구만 반복할 뿐 종합적인 대책이나 제도 안착을 위한 조치들에 대해 제대로 의견도 내지 않고 있다.

기업의 목소리가 작아진 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순실 사태’ 등과 연루돼 세력이 크게 약화된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맏형’ 역할을 해야 할 대한상의는 ‘중재자’ 역할만 하려 하고, 중기중앙회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양대 노총의 위세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 불참, 국회의원 낙선운동 등 배수진을 치며 국회를 몰아붙이고 있다. 문제를 대하는 ‘간절함’과 해결책을 찾으려는 ‘절박함’에서 경제단체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무엇이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