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중소기업의 생존법칙
얼마 전 ‘동물의 왕국’을 봤다. 사바나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던 영양들이 사자의 공격이 시작되자 무리를 지어 이리저리 방어선을 치며 움직였다. 이때 겁먹은 영양 한 마리가 집단에서 이탈했고, 결국 사자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사바나에서 ‘을’인 초식동물의 이런 생존법은 시장경제의 ‘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하며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약자인 중소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함께 힘을 뭉쳐 협동조합이라는 플랫폼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가령, 중소기업이 공동구매를 활성화한다면 더 이상 ‘을’이 아니라 당당한 위치에서 구매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주택가구조합은 15개 품목 300억원 규모의 원부자재 공동구매를 통해 조합원사의 원가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협동조합이 잘 발달된 선진국이 있다. 독일에선 산업연구조합이 회원들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기반기술을 연구하거나 기술표준을 만드는 등 기술력 있는 ‘히든 챔피언’ 육성을 견인하고 있다. 일본은 조합 금융지원을 통해 공장 집단화, 집적지역 기반 정비, 공동시설 설치 등 중소기업의 구조 고도화를 유도한다. 또 ‘중소기업조합사’가 조합의 전문경영인으로 참여하거나 컨설턴트 역할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건전한 조합운영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협동조합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낮은 조직화율, 부족한 인적 자원 등으로 조합 생태계가 매우 취약하다. 아직도 상당 수의 협동조합이 본연의 역할인 공동사업을 수행하지 않고 있으며 상근임원 공석률도 높아 개선이 시급하다.

홍보 및 교육 강화, 신산업 조합 조직화 등을 통해 협동조합이 활성화되고 협업 생태계가 구축되면 개별기업 중복 투자의 비효율이 제거되고 ‘규모의 경제’로 대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 이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앞당기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개별기업 직접지원 위주인 정부 정책도 간접 지원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합을 만들고, 정부는 조합이 추진하는 공동사업을 지원해야 한다. 나아가 협동조합 정책을 전담하는 부서의 신설도 필요하다.

융복합이 활발한 네트워크 시대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협동조합을 통한 협업으로 살아남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것이 사바나가 가르쳐준 중소기업의 생존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