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모비스 분할 및 현대글로비스와의 합병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전격 취소했다.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잠정 중단한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시장의 고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검토해 반영하고 기업가치를 향상시키는 방안을 찾겠다”고 했지만 대안은 많지 않아 보인다.

현대차 사례는 한국 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의 거센 지배구조 개선 압력과 단기수익을 노린 헤지펀드의 공세 사이에 끼여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다.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그 약점을 파고들어 사실상 불가능한 지주회사 전환을 내걸고 주주환원을 요구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로 규정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건에 대해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까지 제기해 국민연금의 ‘찬성’ 가능성을 봉쇄하는 전략도 구사했다. 정부의 압박에 쫓기는 기업은 헤지펀드의 좋은 먹잇감임을 입증한 셈이다. 현대차의 분할·합병안에 만족한다던 공정거래위원회는 무슨 해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이번 사태는 한국에서 헤지펀드 공격이 먹힌다는 신호로 작용할 게 뻔하다. ‘제2, 제3의 엘리엇’ 등장이 시간문제이고, 시장 눈높이는 한껏 높아지게 생겼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압박도 모자라, 대주주 의결권 제한장치를 갈수록 늘리고 있다. 헤지펀드에 ‘멍석 깔고 잔칫상까지 차려주는 꼴’이다. 기업지분 보유기간이 평균 423일에 불과하다는 헤지펀드들이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관심 있을까.

기업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선진국에선 기업이 처한 환경과 경쟁여건 등에 따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주주들이 기업 주식을 계속 보유한다면 그 자체로 좋은 지배구조로 ‘시장’이 평가한다. 반면 한국에선 정부가 앞장서 ‘지배구조에 정답이 있다’며 방향과 속도에까지 압력을 넣는다. 경영권 방어수단은 다 막고 손발 묶인 채 싸우라고 한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맞서야 할 간판 기업들이 정부의 지배구조 압박에 온 역량을 투입해야 하는 게 정상일 수는 없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