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수목장(樹木葬)
독일 접경지에 있는 인구 600여 명의 스위스 마을 마메른. 보덴제 호숫가의 이 언덕 마을은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포도밭 덕분에 ‘숨겨진 지상낙원’으로 불린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썼던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의 전기 기술자 우엘리 자우터는 1992년 죽은 영국 친구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골을 뒷산 나무 밑에 묻어줬다. 이후 이곳은 수목장(樹木葬)의 탄생지이자 최초의 수목장림(樹木葬林)으로 유명해졌다.

화장한 유골을 나무 아래 묻는 수목장이 장법(葬法)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1999년이다. 자우터는 마을 뒷산을 ‘프리트 발트(Fried-Wald·평화의 숲)’로 이름짓고 스위스와 유럽연합의 특허를 받았다. 그는 장목(葬木)에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사망일, 장목번호가 새겨진 명패만 걸고, 다른 치장은 금지하기로 했다.

독일에서는 2001년 헤센 주에 라인하르츠발트 수목장림이 처음 등장했다. 숲을 사랑하는 독일인 특유의 정서로 스위스보다 빠르게 확산됐다. 이후 유럽 전역으로도 퍼져갔다.

우리나라에 수목장이 처음 선보인 것은 2004년이다. 고려대 임학과를 창설한 김장수 교수가 “죽어서 나무로 돌아가겠다”며 평생 가꿔 온 50년생 굴참나무 아래에 묻히면서 주목을 받았다. 2007년 관련법 개정 이후 경기 양평 국유림에 첫 국립수목장림인 하늘숲추모원이 생겼다.

수목장에 활용되는 나무는 주로 소나무 향나무 주목 측백나무 등 사철 푸른 나무와 과실수 은행나무 단풍나무 등이다. 수목장 비용은 나무 종류나 장지 여건에 따라 수백만원부터 1억원까지 든다. 여러 명의 유골을 묻는 공동목은 200만~300만원, 개인목은 400만원, 부부목은 600만원 안팎이다. 가족목은 1000만원을 넘기도 한다. 최근에는 1억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특정 단체나 문중이 관리하는 곳 외에 일반인이 묻힐 수 있는 수목장림은 60여 곳뿐이어서 아직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 ‘화장 후 수목장을 원한다’는 응답 비율이 65.6%나 됐다.

어제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유골이 경기도 곤지암 화담숲 인근에 묻혔다. 재계 거목뿐만 아니라 시인 오규원 등 문인들의 수목장도 늘고 있다. 해마다 기일이 되면 추모객들은 나무 아래에 모여 고인의 뜻을 기린다.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서 생전의 음성을 듣기도 한다. 죽음을 ‘어떤 멜로디의 마지막 화음’에 비유한 사르트르도 그랬으리라.

하긴 나무 앞에서는 누구나 눈빛이 순해지고 마음이 맑아진다. 미국 시인 조이스 킬머가 ‘나무보다 아름다운 시를/ 내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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