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케모포비아 키우는 '따로 행정'
매트리스에서 허용치 이상의 방사성 물질 라돈(Rn)이 검출된 ‘라돈 침대’ 사태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라돈 발생원인 물질인 희토류 광물 ‘모나자이트’가 침대뿐만 아니라 건강 팔찌·목걸이, 마스크 등 각종 건강기능성 제품과 생활용품에 사용된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2011년 촉발된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판박이”라며 “약 18만 개에 달하는 관련 제품을 전수 조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고, 한국소비자원은 한꺼번에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절차인 집단분쟁조정을 시작할 계획이다.

증폭되는 생활용품 위해성 논란

지난 18일까지 접수된 ‘라돈침대’ 리콜 건수는 2만6000여 건에 이른다. 폐질환, 피부질환, 갑상샘질환 등을 호소하는 소비자도 2000명을 넘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불거진 각종 ‘케모포비아(chemophobia·화학물질 공포증)’가 이젠 ‘방사성 물질 공포증’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믿고 쓸 만한 제품을 찾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만 ‘살충제 계란’에 이어 생리대·치약·기저귀·휴대폰 케이스 등 각종 제품의 위해 논란이 끊이지 않아서다. 정부는 유해물질 파동이 발생할 때마다 초기 대응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숱한 사건들을 겪었지만 매번 ‘부처 간 사각지대’니 ‘부처 간 엇박자’니 하는 문제점들을 지적받고 있다. 범(汎)정부 차원의 제품 안전관리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서다. 그렇다 보니 사고가 터진 다음에야 부랴부랴 조사에 착수하고 대책을 내놓기 일쑤다.

‘라돈 침대’ 파문에서도 당국의 소홀한 관리·감독과 어설픈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특히 1차 조사 결과가 나온 지 닷새 만에 말을 바꿔 정부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1차 조사 때만 해도 “암을 유발하는 방사성 물질 농도가 기준치(연간 1밀리시버트·mSv) 이내”라던 입장을 2차 조사에서는 “기준치의 최대 9.3배”라고 뒤집은 것이다. 처음에는 안전하다고 발표했다가 불신을 자초한 ‘살충제 계란’ 사건의 복사판을 보는 듯하다.

'생산-소비-폐기' 단계별 관리 절실

화학물질과 방사성 유발 물질은 ‘원료-제품 생산-소비-폐기’ 단계마다 다양한 위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통합 관리가 절실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허가, 검사, 관리, 역학조사 등의 업무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다. 화학물질을 사용해 만든 공산품의 품질과 규격 관리는 산업통상자원부, 일부 공산품 유해 화학성분 조사 및 관리는 환경부, 의약외품·식품·위생용품·화장품의 허가와 성분 관리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담당하고 있다. 살충제 등 농약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맡고 있다. 인체 피해 역학조사는 질병관리본부 소관이다.

이런 ‘제각각 관리 시스템’에서는 부처 간 정보 교류와 정책 협조가 쉽지 않다. 사고 예방에서 원인 규명, 대책 수립에 이르기까지 효율적인 대응이 어려운 이유다.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관리·감독의 난맥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화학물질을 통합 관리할 컨트롤타워 마련이 시급하다. 미국에선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환경보건연구소(NCEH)가 생활화학제품의 인체 유해성 여부 및 역학 조사를 책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부처 간 정책 조정 권한이 있는 국무총리실이 상시적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이것이 어렵다면 위해성 평가 기능만이라도 한 부처가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문성을 강화하고 부처 간 엇박자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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