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美·中 통상전쟁 '판도라의 상자' 이제 열렸다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미·중 간 무역 협상 결과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중국이 3750억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대폭 줄이겠다고 약속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 목표가 나오지 않는 등 이상한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 언론들은 통상 마찰을 서둘러 봉합한 기색이 역력하다며 비판하고 있다. 미·중 간 무역은 워낙 구조적이어서 한 번 합의로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도 하다. 이번 합의와 그 연장으로 전개될 후속 조치들이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우리로선 우려되는 대목이다. 미·중 무역 마찰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이번 회담을 주도한 류허 중국 부총리는 지난 19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상원의원은 “미국 관료들은 항상 중국의 속임수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댄 디미코 트럼프 정부 통상자문관은 트위터에서 “장갑을 벗고 이제 본격적인 작업에 나설 때”라고 지적했다. 미·중 통상 마찰의 1라운드가 끝난 뒤 잠시 휴식기를 갖는 모양새다. 다시 새로운 통상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그만큼 이번 협상이 양국 무역과 경제 구조를 건드린 게 아니라 단순한 정치 협상이었으며 미봉책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더글러스 어윈 미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협상은 1980년대 미국이 일본에 대응한 정책과 비견된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미국과 일본은 아무런 목표 수치를 갖지 않고 무역 마찰을 해결하려 했다.
[뉴스의 맥] 美·中 통상전쟁 '판도라의 상자' 이제 열렸다
中, 콩 등 농산물 수입 늘린다

이번 합의에서 중국은 미국의 자원과 농산물, 항공기, 의료 등을 대폭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구매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미국에 제시했다고도 했다. 지금 주목되는 부분은 농산물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원자재다. 이런 품목의 수입 확대는 중국의 산업 피해가 가장 적어 일찌감치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트위터에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대량으로 추가 구매하는 데 합의한 것은 수년 사이 미국 농부들에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라고도 했다.

중국은 대규모 가축 농장이 늘어나면서 사료용 콩 수요가 급증한 국가다. 미국은 이 수요의 50%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지난해 미국이 중국에 수출한 콩만 139억달러어치가 넘는다. 미국에서 콩 수입을 더 늘리면 중국 농가가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아르헨티나 등 다른 콩 수입국가들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농산물보다 더 관심을 끄는 대목은 미국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이다. 특히 천연가스 수입이 대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천연가스 수요는 중국 전체 에너지 수요의 7%에 이른다. 미국의 수요 29.2%와 독일의 수요 23.7%와는 차이가 있다. 중국은 천연가스 소비 목표를 2030년 15%까지 올릴 계획이다. 27개국에서 수입하지만 주로 터키와 호주에서 들여온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데다 가격도 싸다. 미국 천연가스는 2016년부터 수입했지만 너무 멀어 수송료가 만만찮다. 다른 국가에서 수입한 가격보다 87%나 높다. 최근 파나마운하 확대 개통과 함께 운송 거리가 줄었으며 가격도 내렸다. 한국에 이어 미국 LNG 수입 2위(그래프)다. 이를 더욱 늘리면 물론 다른 LNG 수출국이 타격을 받는다. 이란이 석유 제재로 중국에 석유나 천연가스를 팔지 못하면 미국 차지가 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많다.

ZTE 처리는 현재 진행형

뉴욕타임스는 테슬라의 전기차도 중국이 환영할 만한 구입 품목으로 본다고 밝혔다. 중국의 ‘수입자율확대(VIE: Voluntary Import Expand) 전략’이다. 수출자율규제(VER: Voluntary Export Restraint)와 함께 관리 무역의 전형으로 미국이 통상협상에서 많이 써먹는 전략이다. 중국도 이런 방법을 통해 통상 마찰을 막을 수 있을뿐더러 내수시장을 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합의에서는 중국이 강력하게 제재 완화를 요구한 중국 통신기업 ZTE의 수출 제재를 풀었다는 게 주목된다. 중국은 지금 제조 강국으로 구조적 전환을 이루려는 ‘제조 2025’ 전략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주력하는 것은 정보기술(IT)과 제조업의 결합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통신기술 확보가 중요하다. 이번 회담에서 마지막까지 쟁점으로 남아 있었던 게 ZTE 처리 문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반대가 많아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양국의 통상 문제는 워낙에 구조적이다.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과 첨단 산업 및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미국의 무역은 너무나 다르다. 더구나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무역은 계획적이고 전략적이다. 아직 중국이 시장경제국 지위를 얻지 못한 이유가 있다. 미·중 간 통상 합의는 단순히 금액으로 해결하려는 차원을 넘어선다.

체제 다른 국가 간 분쟁, 쉽지 않아

그래서 섣불리 합의하는 것은 미봉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중국 투자나 중국의 미국 투자도 연장선상이다. 중국의 요구사항인 동등 대우 문제나 지식재산권 문제도 그렇다. 이번 협상에선 합의에만 그쳤다. 사회 체제가 다르고 경제 체제가 다른데 같이 볼 수가 없다. 미·중 간 통상 분쟁 해결이 그래서 어렵다.

대부분 경제학자는 중국이 미국에서 더 많은 물품을 수입해 흑자를 축소한다면 그만큼 달러화가 중국에서 빠져나갈 것으로 관측한다. 더욱이 농산물과 천연가스는 달러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달러화 수요가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달러화 수요가 늘어나면 중국 위안화는 가치가 평가절하돼 중국 상품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이 있게 된다. 한국 기업이 외국 시장에서 중국 제품과 경쟁하는 품목들은 그만큼 힘들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 많이 수출하는 중간재도 위안화 가치가 낮아지면 중국 국내 제품이 훨씬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韓·中 경쟁 격화될 듯

중국이 미국으로의 수출을 줄이면 그만큼 다른 나라에 물건을 팔려고 하기 때문에 중국의 대한(對韓) 통상 압력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또한 중국이 ‘제조 2025’를 추진하면서 제조업의 수입대체화를 꾀해 중국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등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지금 미·중 무역 합의는 끝난 것이 아니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양국 간 무역 패턴을 갖추려면 꽤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일본은 미·일 자동차 협정과 반도체 협정을 통해 고급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강국으로 거듭났다. 중국도 지금 그것을 노리고 있다. 이번 무역 합의를 긴 시각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