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연구개발(R&D)에 올해부터 5년간 2조2000억원을 투입하고, 인공지능대학원 신설 등을 통해 AI 전문인력 5000명을 양성한다는 내용의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과학기술계 현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심의·의결한 ‘AI R&D 전략’이 얼마나 일관성 있게 추진될지 알 수 없어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쏟아내는 연구계획이 흐지부지되면서 쌓인 R&D정책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AI만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가 처음으로 계획을 내놓은 게 아니다. 2016년 ‘알파고 쇼크’ 당시 박근혜 정부는 ‘한국형 AI’를 내걸며 국내 주요 정보기술(IT)기업들이 참여한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현 인공지능연구원)을 출범시켰다. 당시 정부는 연간 150억원씩 5년간 총 750억원의 연구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이른바 ‘적폐’ 논란이 연구로까지 번지면서 예산이 모두 삭감됐다. 이러니 이번 정부가 내놓은 AI R&D 전략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현장이 홍역을 치른다. 지식경제(김대중 정부), 혁신주도경제(노무현 정부), 녹색경제(이명박 정부), 창조경제(박근혜 정부) 등 구호가 달라지면 과학기술계획도 덩달아 부정당한다. 문재인 정부라고 다를 게 없다. 과학기술계에서는 “1990년대 정부가 기획했던 ‘G7프로젝트’라는 첨단기술계획이 일관되게 추진됐다면 한국 산업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이 AI를 선도하게 된 것은 지난 50년간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대학, 기업, 정부에서 연구를 꾸준히 해온 결과다. 중국이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2030년까지 모든 AI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이 일관성 있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AI 강국이 되려면 정권이 교체돼도 과학기술만큼은 초당적(超黨的)으로 접근하겠다는 정치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AI 연구계획이 지속성을 갖게 되면 규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도 그만큼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