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소상공인 보호제도가 국제 통상분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한경 보도(5월15일자 A1면)에 따르면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건자재 유통업체 에이스하드웨어(AH)는 서울 금천구에 매장을 열려다 정부가 ‘사업조정’ 제도에 따라 개점을 3년 연기시키자 부당함을 호소하는 서한을 주한 미국 대사관에 보냈다. “국제규범에 위배될 뿐 아니라 다른 글로벌 유통업체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는 게 AH의 주장이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AH의 서한을 사업조정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통상문제로 접근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보고 있다. 자칫 한·미 간 새로운 통상마찰의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AH 미국 본사는 WTO에 제소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조정’은 대기업 진출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경우 사업의 인수·개시·확장을 연기 또는 축소하도록 권고하는 제도다. AH는 지난 3월 매장을 완공했지만 시흥유통조합이 사업조정을 신청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사업 연기를 한 차례 연장할 경우 최대 6년간 매장을 열지 못한다. 60여 개국에 매장을 낸 AH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사업조정,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으로 대표되는 ‘상생규제’는 과거 정부에서부터 시작돼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또 다른 상생규제인 소상공인 적합업종 제도 신설안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골목상권 및 약자 보호라는 명분에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 온 결과다. 하지만 국제통상 규범에 위배될 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의 편익에도 반하고, 유통 근대화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계속 밀어붙이다 결국 통상분쟁으로 비화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물안 규제’는 이것뿐이 아니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규제를 비롯해 수도권 규제, 금산분리, 빅데이터와 게임 관련 과잉 규제도 한국에만 있는 것들이다. 정부가 상법을 개정해 도입하려는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도 외국에선 거의 자취를 감췄다. AH의 경우에서 보듯, 글로벌 스탠더드를 벗어난 규제는 결국 제 발등을 찍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없어지기는커녕 점점 늘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