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는 행사를 하기로 발표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생큐. 매우 똑똑하고 정중한 몸짓!”이라고 환영했다. 앞서 그는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위대한 성공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도 “미국과 만족한 합의를 했다”는 반응을 내놨다.

미·북 정상회담에서 주고받을 내용이 큰 틀에서 결정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이 과감한 조치를 한다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누리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 게 주목된다. 미국이 북한에 비핵화를 조건으로 체제 보장과 함께 ‘포괄적 보상 패키지’를 제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에선 벌써부터 남북한 경제 협력 방안들이 잇따르고 있다.

관건은 북한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다. ‘벼랑 끝 전술’뒤 ‘통 큰 제안’을 하고, 의제를 세분화해 단계마다 보상을 받아내려 한 게 그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부자의 전술이다. “북한은 협상을 분쟁 해결이 아니라 혁명 성취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일각의 분석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대북 예방전쟁까지 나왔던 미국과 연초까지 “핵은 정의의 보검”이라고 외친 북한에서 갑자기 낙관론이 줄을 잇는 것도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지하시설만 1만여 곳에 이른다는 북한에서 핵시설을 일일이 검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혹여라도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는 선언 수준에 그치고, 북한 체제 보장과 보상에 합의한다면 한국으로선 악몽이다. “북핵 문제는 ‘완전한 핵폐기’가 아니라 ‘북핵 위협 감소’로, ‘핵군축’으로 막을 내릴 것이며, 결국 북한은 ‘비핵 국가로 포장된 핵보유국’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의 말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대북 보상이 이뤄진다면 그 규모는 1994년 제네바 합의로 지원된 20억달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문제는 이번에도 제네바 합의 때처럼 한국이 비용의 70% 이상을 떠안게 되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협상은 미국과 북한이 하고, 비용은 대한민국이 두고두고 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근거 없는 낙관론이 아닌, 미·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냉철한 자세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