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경제위기론은 왜 대체로 틀리나
지난주 아르헨티나의 채무불이행 선언을 계기로 ‘신흥국 경제 위기설’이 급격히 확산됐다. 지난 2월 초에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당초 예상보다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또 3월에는 미·중 무역마찰 확대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각국의 주가가 큰 폭으로 출렁거렸다.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글로벌 저금리하에서 형성된 금융자산 버블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후 4월에는 미국의 장기금리가 연 3%를 돌파하면서 금융 불안이 확대되기도 했다. 올 들어 위기설이 거의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호되게 겪었고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에 속절없이 당한 우리로서는 특히나 위기 가능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위기를 잘 예측할 수만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일부 언론의 위기론 보도가 과도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의 문제로 한정해 봐도 그들이 위기 예측에 성공적이지 못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위기 예측 모델 자체의 문제다. 위기 예측을 위해 다양한 모델이 사용되는데 이는 기존의 경제 분석틀을 활용해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겠다는 것이어서 예측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제 구조와 경제 주체들의 행동 양식에 변화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혁신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모습의 새로운 산업이 나타나고 있으며 소셜미디어 등의 영향으로 경제 주체들의 반응 행태도 달라지고 있다.

위기모형이 개별 국가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단순하면서도 자주 위기지표로 활용되는 ‘신용 갭(가계 및 기업 부채의 합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수치가 장기 추세에서 벗어난 정도)’을 기준으로 보면 중국의 위기 도래 가능성이 매우 높게 나오지만 아직까지 중국 경제가 위기에 근접한 적은 없다.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은 신용 갭뿐만 아니라 경상수지와 같은 대외경제관계를 나타내는 변수가 보완돼야 한다.

둘째, 연구자의 편향도 정확한 위기 예측을 어렵게 한다. 먼저 위기론이 남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는데 위기가 발생하는 1종 오류와 위기를 예측했는데 위기가 발생하지 않은 2종 오류 가운데 1종 오류를 더 심각하게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예측대로 위기가 올 경우를 시그널이라 하고 오지 않는 경우를 노이즈라 할 때, 개별 연구자나 예측 기관들은 일정 정도(예컨대 3분의 2 이상) 위기를 맞히는 한에서 시그널 대비 노이즈 비율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추는 시도를 할 수 있겠지만, 위기론 남발 경향을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기설이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원화 가치 하락이 조금만 빨리 진행돼도 금융기업들이 위기설을 주장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원화 약세 기대가 확산될 경우 외국인 투자자의 증권 투자가 줄거나 자금이 유출돼 보유한 금융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금융회사의 수수료 수입은 줄어들게 돼 결과적으로 원화 약세를 과도하게 경계하는 편향을 낳는 것으로 풀이된다.

위기가 적절하게 경고된다면 정부 차원이든 기업 혹은 가계 차원이든 위기에 대한 준비 태세를 갖출 수 있으므로 모델에 최근의 경제 구조 변화를 반영하는 등 예측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아울러 자칫 남발된다면 위기론이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이 될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미국이 겪은 다섯 번의 경기 후퇴에 대해 주식시장은 아홉 번이나 예측했다고 하는 폴 새뮤얼슨의 조크가 이를 경고하고 있다. 향후 위기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위기에 대한 사전 경고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위기 예측에 따른 위기론 피로감 때문일 수도 있어 보다 신중한 분석과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