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생태계가 발전하려면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를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비판하는 시선을 거둬야 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순수 민간자본으로 ‘매쉬업엔젤스 개인투자조합 1호’ 펀드를 결성한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가 한 말이다. 대기업이 스타트업 인수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스타트업에 관계하는 한 투자자의 목소리가 아니다. 이 대표는 다음 공동창업자 출신인 1세대 벤처기업인이다. 2010년 국내 최초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 설립에 참여했고, 지금 이끌고 있는 매쉬업엔젤스도 2013년 초기 스타트업을 돕는 ‘엔젤 투자’ 네트워크로 시작했다. 이런 축적된 경험은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정부가 조성하겠다는 스타트업 생태계는 현장의 기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스타트업 업계가 대기업의 인수합병(M&A)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철폐를 요구하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대기업집단 지정 등 사전적인 규제를 고집하는 가운데 스타트업 인수 시 한시적으로 계열사 편입 유예를 해 주는 게 전부다. 이래서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처럼 대기업의 활발한 M&A가 이끌어가는 자생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청년 창업가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정부가) 뭘 도와줄까’ 이런 식의 질문이 없는 생태계가 건강하다”며 “생태계는 자생(自生)과 같은 말인데, 지금은 자생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혁신성장’ ‘개방형 혁신시스템’ 등이 가능하려면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주도하는 생태계로 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부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시장과 기술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툭하면 간담회다 뭐다 자리를 만들어 기업인을 불러내는 정부가 “벤처 생태계를 선진화하려면 이런 자리부터 없어야 한다”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를 아는지 모르겠다.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쪽은 정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