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나쁜 규제는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하면서 ‘알고도 안 고치는’ 규제다. 부작용만 양산해 모두를 패자(敗者)로 만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2012년 도입한 유통 규제가 그런 경우다.

유통 대기업의 출점 제한,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 등을 강제한 지 6년이 흘렀건만, 기대했던 효과는 안 보이고 소비자 후생만 훼손했다는 지적이 많다. 전통시장 매출이 계속 쪼그라드는데 대형마트는 성장이 멈추고,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1, 2위 업체가 모두 적자에 빠졌다. 유통채널의 몰락 도미노다(한경 5월7일자 A1, 5면).

이런 결과는 유통을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대립관계로만 규정한 ‘정부 실패’에 기인한다. 반대로 지난 6년간 온라인몰과 편의점은 급성장했다. 1인 가구 증가, 모바일 확대 등 소비패턴 변화 덕이다. 이런 추세에는 눈감고, 단지 눈에 보이는 대기업 점포만 틀어막으면 골목상권이 살 것이란 기대는 단견(短見) 중의 단견이다. 게다가 규제 틈새에서 탑마트 등 중대형 슈퍼마켓들은 점포수가 2010년 2만 개에서 지난해 6만500개로 급증했다. 무엇을 위한 유통 규제인지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목적을 상실한 악성 규제를 멈추기는커녕 더 확대할 태세란 점이다. 강제휴무 대상에 복합쇼핑몰까지 넣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이미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조차 아마존 혁명에 휘청하고, 국내에서도 온·오프라인 및 탈(脫)지역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유통빅뱅’ 시대에 정부만 골목상권 보초를 서고 있는 꼴이다.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발 공부 좀 하고 규제하든 말든 하라”는 기업인들의 호소를 언제까지 외면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