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국가개입주의' 덫에 갇힌 문재인정부 1년
정치에는 임기가 존재하지만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 정치는 조각(組閣)을 통해 새로 출발하지만 경제는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인수받고 이어 나가야 한다. 경제가 처한 상황을 숙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행선지는 인천공항공사였다. 그는 현장에서 공공 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현안이 공공 부문 비정규직 문제였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비정규직은 그 자체로서 없어져야 할 악(惡)은 아니다. 노동시장에 새로 들어온 신참 근로자에게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가는 ‘징검다리’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첫 작품’은 11조원 추경 편성이었다. ‘일자리 창출과 민생 안정’을 내걸었지만, 추경 편성의 논거는 설득적이지 않았다. 초과세수를 이용한 추경 편성인 만큼 재정 건전성에 어떤 부정적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논거 아닌 논거였다. 초과세수를 추경 편성으로 소진할 이유는 없다. 2017년 추경 편성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는지 알 수 없다.

첫 번째 행선지와 첫 정책 선택은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의 ‘첫 단추’에 비견된다. 첫 단추를 통해 ‘일자리 정부’를 자임했고 ‘국가가 최대의 고용주’여야 한다고 공언했다. 1년 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전년 동월 대비 2018년 3월 취업자 수 증가는 11만 명으로, 그 자체가 ‘고용절벽’이다. 50만 명에 이르는 2월 대학 졸업자는 실업으로 내몰렸다. 3월 전체 실업률은 4.5%로, 3월 기준으로 2001년 5.1%에 이어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3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70.3%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최고조였던 2009년 3월(69.9%) 이후 9년 만에 최저다.

경제는 정직하다. 화(禍)가 느닷없이 들이닥치지는 않는다. 만약 ‘어떤 기업’이 최근 3년간 매출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한계에 도달했다면 ‘비상 경영계획’을 세우고 위기관리에 나섰을 것이다. 여기서 말한 ‘어떤 기업’은 불행하게도 ‘한국 경제’다.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제조업 매출 증가율은 -1.59%, -2.99%, -0.47%를 기록했다.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2016년 11.19%)과 한계기업(2016년 32.3%) 비중은 감내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솟았다. 매출이 줄고 인건비 비중이 높아지고 한계기업이 증가했다는 것은 우리 경제에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문재인 정부는 위기 요인에 천착하지 못했다. 헛짚었다. 이론적으로 공인되지 않고, 정책적으로 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은 ‘소득주도성장’에 함몰됐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파생 정책 상품이다. 사용자가 ‘어딘가에 돈을 숨기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덜컥 결정한 것이 시급 7530원이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각종 노동 편향적 정책으로 노(勞)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게 했다. 구조조정은 더 멀어져 갔다.

문재인 정부의 확대 재정 기조는 미래 세대의 자원을 미리 끌어 쓰는 ‘YOLO 정권(you only live once: 내 임기만 관심 갖는 산타 정권)’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2018년 예산증가율 7.1%는 경상성장률 4.5%의 1.7배다. 경상성장률 이상의 속도로 재정을 계속 꾸리겠다는 것은 노골적으로 미래 세대에 짐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개입주의는 ‘국가는 선하고 전지(全知)하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지식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는 시장을 통하지 않고서는 개인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계산능력’을 갖지 못한다. 경제는 그 자체가 복잡계이기 때문에 설계자 의도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장기적으로 경제성과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에 기초해 어디를 지향하는가’이다. 제도와 철학이 관건이다. 시대 퇴영적인 국가개입주의를 벗어야 한다. 국가가 고용주일 수는 없다.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일자리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산업구조 개편, 노동개혁, 규제개혁, 경쟁촉진 등을 통해 ‘성장 기반’을 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