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어른의 아버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기는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경건함으로 이어지기를.’ 영국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다.

시인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고 감동하지 못하는 인생은 죽음만 못 하다고 노래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유명한 구절도 이 시에서 나왔다. 우리는 해마다 5월이 되면 이 명구를 읊조리며 어린이날을 맞는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시와 거리가 멀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기는커녕 생활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인간 심성의 근원인 동심을 잃고 설익은 어른의 논리로 아이들을 다그치기도 한다. 워즈워스의 시를 패러디한 유안진 시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다’를 읽다가 가슴을 친다.

‘우격다짐으로/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려 들며/ 행복한 어린이를 불행한 어른으로 퇴행시키려 들며/ 어른의 아버지에게 어린이의 아들을 닮으라고 윽박지르는/ 교육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거꾸로 사업.’

우리 교육의 비뚤어진 단면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시다. 예부터 ‘가정은 도덕의 학교’라고 했다. 지금의 사회 갈등과 정치 대결, 편가르기, 시기, 질투도 ‘어처구니없는 거꾸로 교육’의 결과가 아닌지 자성하게 된다. 5월에는 어린이날(5일)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부부의 날(21일), 성년의 날(셋째 월요일)이 잇닿아 있다. 징검다리 기념일에 지출이 많아 걱정도 되지만, 돈 들여 챙길 가족이 없다면 얼마나 쓸쓸한가.

가정은 식구들이 힘들 때 위로가 돼 주는 방이자, 일터에서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다. 모두가 한때 자식이었다가 부모가 된다. 어버이날 ‘노부모가 자식들에게 주로 하는 거짓말’ 설문조사에서 ‘아픈 데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선물 필요 없으니 살림에 보태써라’ ‘바쁜데 오지 마라’도 눈물겨운 거짓말이다.

저울 한쪽에 세계를, 다른 한쪽에 어머니를 놓고 달면 지구 무게가 더 가벼울 것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어린이와 부모의 심성을 함께 보듬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긴다. 어머니의 고운 발을 다시 한번 만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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