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마르크스 망령'을 떨쳐 버려야
5일은 카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마르크스는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체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폐지와 국유화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한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데 우리는 30년 전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을 지켜봤다. 그래서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의 길만이 열려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당시 프란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끝났다”는 의미에서 《역사의 종언》을 사색했다.

그러나 죽은 듯하던 마르크스가 다시 살아났다. 최근에는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남미 경제를 유혹해 초토화시켰다. 그가 태어난 독일 트리어시(市) 주최의 200주년 경축 행사도 요란하다. 중국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세운 동상 제막식도 열린다. 중국이 동상을 기증한 것은 독일에서 내친 마르크스의 정통 후계자가 되겠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건 죽은 마르크스가 되살아나고 있는 이유다. 자본주의가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마르크스의 진단 때문이다. 그에게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을 거머쥔 자본가가 노동을 지배·착취하는 사회다. 이런 체제는 실업·빈곤·분배의 양극화가 구조화돼 있어서 사회주의 체제로의 변혁 없이는 노동자의 삶은 궁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마르크스 생각의 핵심이다.

최저임금제, 노동시간 단축, 해고 금지, 소득주도성장,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노골적으로 노동자 편을 들고 경제 민주화를 통해 대기업을 정부와 노동자 공동의 적(敵)으로 간주하는 등 오늘날 좌파정당 정책에는 마르크스의 색깔이 짙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유산은 수많은 오류로 엮여 있다는 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빈곤과 실업의 주범이라는 주장부터 틀렸다. 임금 인상, 일자리, 노동시간 단축 등 서민층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게 자본주의 역사다. 그런 개선은 자본 축적과 투자를 통해 이뤄졌다. 노동 생산성을 높여 소득을 꾸준히 증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저축을 통한 자본 축적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부의 집중과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비판도 틀렸다. 금융회사와 시장의 등장으로 다양한 규모와 유형의 금융 대출로 부(富)가 광범위하게 분산됐고 중산층도 두텁게 형성됐다. 부는 소수에 집중됐고 가난한 소비 대중은 쓸 돈이 없기 때문에 불황이 생겨난다고 하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불황론’도 그래서 틀렸다.

빈곤, 실업, 양극화, 불황 등 사회주의자들이 시장 탓으로 돌리는 경제 문제는 사실상 반(反)시장 정책이 그 원인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예를 들면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도 자본주의 탓이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통화·주택정책 탓이었다. 자유와 재산권을 확실하게 보호하기만 하면 시장은 스스로 실업, 빈곤, 양극화 등 경제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하는 자생적 질서라는 걸 마르크스는 알지 못했다.

이쯤에서만 봐도 마르크스 사상은 현대사회에 관해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이유는 그가 언어 표현능력이 탁월한 정치적 선동가이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을 자극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이끌어 내는 데 능란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비틀고 곡해·위조하는 언어들이 수없이 개발·축적돼 오늘날 우리의 언어문화를 혼란시키고 있다. 욕설, 냉소, 희화화 등의 언사들은 진지하고 분별 있는 담론을 방해하고 민주주의도 파괴한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경쟁 없는 사회, 유대감, 나눠 먹기 같은 마르크스주의 사고의 범주는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본능적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인간 본능이 작동하면 자유시장 경제는 무력화되고 그 뒤로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권력과 피에 굶주린 국가가 등장한다. 레닌과 스탈린의 사회주의로 희생당한 1000만 명의 죽음, 1950년대 이후 중국의 대규모 기아사태와 빈곤, 독일의 히틀러와 나치즘 같은 아픈 역사는 마르크스 없이 생각할 수 없다. 한국 경제는 개화되지 못한 원시적인 마르크스 사회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 인격, 재산을 신성시하고 번영을 안겨주는 문명화된 자유주의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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