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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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들이 글로벌 진출의 첫 목표로 동남아시아를 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어느 곳보다 성장 잠재성이 높은 데다 '한국계 기업'의 강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는 2000년대 이후 줄곧 글로벌 경제 성장의 중심지로 거론되는 '기회의 땅'이다. 지난해 평균 경제성장률 5.2%를 기록한 동남아시아 10개국 연합(ASEAN, 아세안)은 향후 10여년간 5%대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는 6억명에 달해 중국과 인도 다음이다.

유럽이나 미주에 비해 거리적·문화적으로 가깝다는 점도 동남아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에서 가까운 곳은 3시간, 멀어도 6시간 거리에 있다. 상당수 한국 기업들이 동남아에 진출해 있으며 관광·문화 교류도 빈번하다. 외국계 은행의 생존이 어려운 일본과 중국을 차치하고 나면 동남아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성장성 높은 시장인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 역시 동남아를 성장 정체의 출구로 삼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발표하고 아세안과의 교류·협력을 미·중·일·러 등 4개국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 정책과의 시너지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뜻이다.'글로벌 뱅크'를 꿈꾸는 은행들이 무게중심에 동남아를 놓고 전략을 수립하는 이유다.

동남아에 진출한 국내 은행 중 현재 가장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은 하나은행이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하나은행은 동남아 법인을 통해 645억7300만원의 순이익을 거둬들였다. 이는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지분 89.01%를 보유한 인도네시아 법인(PT Bank KEB Hana)이 성장을 주도했다. 인도네시아 법인의 작년 순이익은 633억95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0.8% 증가했다. 동남아 법인 전체 수익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나왔다.

신한은행은 하나은행 다음으로 동남아 시장에서 호실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동남아 법인의 전체 순이익은 597억800만원, 전년 대비 6.6% 성장했다.신한은행은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벌었다. 신한베트남은행의 순이익은 453억9500만원으로 동남아 법인 전체 수익의 76.1%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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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은 4대 시중은행 중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동남아 시장에서 440억2100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인도네시아 법인인 우리소다라은행에서만 순이익 384억8800만원을 벌었다. 베트남우리은행, 우리웰스뱅크필리핀은 각각 24억3600만원, 13억2300만원의 순이익을 냈다.

4대 은행 가운데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곳은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이 지난해 동남아 시장에서 거둔 순이익은 3억원으로 전년 대비 57% 줄었다. 진출 시점이 타 은행에 비해 늦다는 것을 감안해도 낮은 성적이다.올해는 사업 규모를 확장해 구겨진 체면을 만회한다는 계획이다.

4대 은행 외에도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 등이 후발주자로 동남아 시장을 향해 잰걸음을 하고 있다.

은행 업계 관계자는 "은행의 해외 진출은 국내 시장에서 이자 장사만 하고 있다는 비판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정부가 신남방정책으로 경제교류를 확대하고 있어 해외 국가 중에서도 동남아 시장 진출이 가장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기서도 문제는 규제다. 국내의 은행업 규제 못지않게 동남아 국가들의 외국계 은행 진입 규제도 벽이 높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은행의 지분 소유 한도가 최대 40%에 불과하고 이를 초과하기 위해서는 2개 이상의 현지은행을 인수해야 한다. 최소 자본금 기준도 3000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IBK기업은행은 Agris은행과 Mitraniaga은행 등 2개 현지 은행을 인수했다.

베트남과 함께 아세안을 이끌고 있는 중심 국가인 태국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고민거리다. 태국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 금융사들의 철수 이후 재진출을 불허하고 있다.

인구 7000만명에 GDP 세계 26위인 태국을 포기한 채 동남아에서의 영향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현재 국내 은행들이 태국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맞다"며 "언제 진출이 가능해질 지 알 수 없어 향후 글로벌 시장 전략에서도 태국을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아름 /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armijjang@hankyung.com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