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北에도 전파해야 할 '대한민국의 성취'
1950년 6월, 기습 남침에 성공한 북한 지도부에 당혹스러운 보고가 잇따랐다. 압도적 화력으로 남쪽 땅을 속속 집어삼키기는 했지만, 점령지 주민들의 반응이 예상과 영 달랐다. 약간의 ‘사상교화’만 하면 민심도 쉽게 평정할 수 있을 것으로 봤는데, 대부분 주민이 곁을 열어주지 않았다.

북한 수령 김일성은 한 해 전 끝난 중국 내전에서 공산당에 역전승을 안겨준 ‘점령지 선무(宣撫)전술’이 남쪽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믿었다. 장개석(蔣介石)이 이끌던 국민당 정부는 중국인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다. 부패한 지방 관리들의 주민 착취를 막지도 못했다. 중국 공산당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야금야금 넓혀나간 주둔지역 주민들에게 생활필수품을 나눠주며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한반도 상황은 중국보다 더 공산진영에 우호적이라는 게 김일성의 판단이었다. ‘자주(自主)’ 구호를 차치하고서도 군사력·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남쪽은 북한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봤다.

그럴 만도 했다. 1945년 일본 식민지배에서 해방됐을 당시 남북한의 경제력은 압도적으로 북한 우위였다. 한반도를 남농북공(南農北工: 남쪽은 농업, 북쪽은 공업지역으로 육성) 정책으로 지배한 일본으로 인해 전력의 92%, 철광석의 98%, 유연탄의 87%가 북한에서 생산됐다. 산업 규모에서도 금속산업은 북 90.1% 대 남 9.9%, 화학산업은 북 81.8% 대 남 18.2%였다. 북한은 주민 1인당 철도 길이와 발전량에서 일본을 앞섰을 정도로 공업화 기반이 탄탄했다.

남쪽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10만㎾의 전력소비량 가운데 7만1000㎾를 북측 송전에 의존했고, 농업이 주산업이었지만 비료가 생산되지 않아 북한 흥남질소비료공장에서 공급받아야 했다. 그러다가 1948년 5월, 북한이 남쪽의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보복으로 전력과 비료 공급을 끊으면서 대혼란이 빚어졌다.

부(富)와 빈곤의 대물림 구조 고착화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해방 당시 200만 호의 남쪽 농가 가운데 자작농은 36만 호(16%)에 불과했다. 소작료가 매년 수확물의 50~60%에 달해 소작농들은 연명(延命)조차 버거웠다. 대구 폭동과 여순사건, 제주 4·3사태 등 민심의 이반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잇따랐다. 북한 지도부의 눈에 착취와 수탈, 해방 이론으로 남쪽을 접수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던 차에 ‘이변’이 일어났다.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 3월 농지개혁법을 공포해 모든 소작농들에게 농지를 갖게 해준 것이었다. 국가가 부재(不在)지주들로부터 일정한 가격에 농지를 사들인 뒤 소작인들에게 판매하되, 충분한 대금납부 거치기간을 주는 ‘유상몰수-유상분배’ 방식이었다. 남쪽보다 4년 앞서 ‘무상몰수-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했다지만 사적 재산 소유를 인정하지 않은 북한과 달랐다.

대한민국의 농지개혁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없는 거사(擧事)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기 소유 농지를 갖게 된 농민들에게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동기 부여’가 시작됐다. 공산당 압제를 피해 내려온 월남민(越南民)들로부터 북한식 토지개혁의 허구를 전해들은 남쪽 농민들이 공산당의 감언이설에 넘어갈 리 없었다. 김일성이 야심 차게 준비했던 ‘해방전쟁’은 이것으로 사실상 성패가 결정됐다. 남과 북의 체제경쟁도 일찌감치 승패가 갈렸다.

사적 재산권 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인 대한민국에 수령 1인의 절대통치와 지시·계획경제체제의 북한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양쪽 체제가 어떤 차이를 낳았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2016년 기준 대한민국과 북한의 국민총소득(GNI)이 45.3배(한국은행 추정) 차이로 벌어졌다.

지난달 27일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의 철도 도로 사정이) 민망한 데가 있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실패를 자인하기에 이르렀다. 북한 지도부가 지난달 30일 당·정·군 간부들을 소집해 ‘경제발전을 위한 연석회의’를 열고 “역량을 총동원해 경제건설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이 그런 결의를 이뤄낼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대한민국의 성취가 더없는 길잡이가 돼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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