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논점과 관점] 쇼트 포지션은 악(惡)인가
금융시장에서 특정 증권이나 상품 가격이 앞으로 ‘오른다’에 베팅하면 영어로 롱(long) 포지션, ‘내린다’에 베팅하면 쇼트(short) 포지션이라고 한다. 여기서 쇼트는 무언가를 매수하고 있다가 파는 매도(sell)와는 달리 아무런 포지션이 없는 상태에서 가격이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베팅하는 것을 말한다. 공매도 역시 쇼트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상품 가격은 등락을 반복하며 향후 가격 전망도 갈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국내 주식시장 현실은 좀 특이하다. 앞으로 주가가 ‘내릴 것이다’라는 말 자체가 일종의 금기어처럼 돼 버렸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매도 리포트를 거의 내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해 국내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 비율은 0.91%로, 외국계(15.24%)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32개 증권사 중 한 번이라도 매도 리포트를 낸 곳은 6곳에 그쳤다.

개인투자자 주가하락에 무방비

보유 주식을 ‘팔라’는 이야기가 이처럼 조심스럽다면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의 가격 하락을 예상해 ‘쇼트’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공매도가 한국에서 거의 ‘공공의 적’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삼성증권의 배당 사고가 나자 엉뚱하게 ‘공매도 폐지’ 목소리가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공매도 세력에 질려 회사를 팔겠다”는 기업가가 있는가 하면 “공매도용 주식을 빌려주는 증권사와는 거래하지 말자”는 운동을 벌이는 투자자들도 있다.

과연 쇼트 포지션은 악(惡)인가? 공매도 폐지론자들은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주범이며 투기세력들이 악용한다고 주장한다. 개인투자자는 할 수 없어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도 한다. 공매도가 주가를 떨어뜨리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다. 다만 보유 주식을 매도하는 것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 투기세력은 공매도뿐 아니라 주식 매집에도 종종 나선다. 개인투자자의 접근이 어려운 것은 프로그램 매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기 쉽다. 쇼트 포지션이나 공매도는 일반투자자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갖고 있지도 않은 것을 판다는 것 자체가 낯선 데다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고 하니 긍정적 생각을 갖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주식을 매수하고 주가가 오르는 것만이 좋은 일이고 매도나 주가 하락은 마치 악(惡)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후진 기어 없는 차 몰라는 식

투자자들만 탓할 것도 아니다. 금융당국은 막연히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개인투자자들이 쇼트 포지션을 취하는 것을 상당히 제한해왔다. 선물 옵션 등 하락에 베팅할 수 있는 파생상품은 증거금 장벽 등을 통해 투자자들의 접근을 어렵게 해왔고 주가 하락 시 수익이 나는 인버스ETF는 2009년에야 도입했다. DC형 퇴직연금은 그나마 인버스ETF 투자조차 금지돼 있어 주가 하락 시 무방비 상태가 된다.

개인투자자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주가 하락인데 여기에 대비할 수 있는 헤지 수단은 극히 제한돼 있는 셈이다. 주식을 매수만 하라는 것은 마치 후진 기어 없는 차를 몰라는 꼴이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연 1%대에 그치는 것도, 공매도가 공공의 적처럼 된 것도 다 주가 하락 때 방어 수단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다. 금융당국부터 쇼트 포지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 관련 상품 규제를 풀고 외국처럼 퇴직연금 투자도 하락에 베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 인식도 바뀌고 균형된 시장 감각도 가질 수 있다.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