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환율은 통상문제의 핵심이다
10년 전 이맘때 한국 정부는 미국과 소고기 수입 협상을 타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한 해 전인 2007년 타결됐지만 미국 의회의 반대로 비준이 지연되고 있었다. 한·미 FTA를 시작하고 협상했던 노무현 정부의 노력은 거기까지였다. 한·미 FTA 비준은 새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 몫으로 남겨졌다. 대선에 이어 총선에서도 압승한 이명박 정부는 소고기 협상을 타결시켜 한·미 FTA 비준의 청신호를 켜려고 했다. 소고기 협상은 이명박·부시 정상회담 하루 전인 2008년 4월18일 타결됐다.

그 이후 벌어진 일은 한국 정치사에서 익숙한 장면들이다. 4월29일 MBC ‘PD 수첩’의 ‘미국산 소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로 촉발된 안전성 논란은 인터넷으로 확산됐고, 5월2일 첫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촛불은 전국으로 번졌고 5월과 6월 내내 타올랐다. 선거에서 압승한 이명박 정부의 자신감은 무너져 갔다. 소통 부재, 미숙한 대응은 사태를 더 키웠다. 국정 추동력은 무뎌졌다. 경제를 살려 달라는 국민적 요구 속에 집권한 신정부에 대한 지지는 봄안개처럼 사라졌다.

지난달 문재인 정부는 한·미 FTA 개정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정부의 협상결과 설명에는 없던 환율 문제가 다음날 터져 나왔다. 통상당국은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협상은 진행됐지만 다른 부처에서 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10년 전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 때와 지금의 환율 문제를 둘러싼 과정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지금도 한국 정부는 환율은 한·미 FTA와는 무관하다고 한다. 환율은 통상의 너무나 심각한 부분이 돼 버렸는데도 말이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소고기는 통상 문제가 아니라 위생 검역문제라고. 게다가 타이밍도 절묘하다. 환율은 한·미FTA 개정협상과 패키지로 타결돼 문재인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6월 지방선거 이전에, 그리고 다음주로 예정된 남북한 정상회담 전에 타결됐다. 10년 전처럼 정치적인 고려가 통상 문제를 압도해 버렸다.

결정적인 것은 다음 대목이다. 10년 전 이명박 정부는 MBC PD 수첩을 사소한 괴담쯤으로 치부했다. 국민들 마음속에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초기에 해소하려는 시도 따위는 없었다. 소고기는 단순한 위생검역의 기술적인 문제였다. 대선과 총선에서의 압승, 스스로 ‘폐족’을 선언한 친노세력의 몰락 앞에서 그들은 오만해졌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촛불시민혁명으로 집권했다는 문재인 정부의 도덕적 우월성 앞에 모든 반대는 적폐로 치부된다. 지지율에 도취돼 오만해졌다.

10년 전 소고기가 통상 문제의 핵심이었듯이, 지금 환율은 통상의 핵심이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도, 미국은 그런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고, 한국 정부는 이에 대처할 묘책을 찾아내지 못했다. 미국은 “한국과 합의한 환율 조항을 모든 향후 무역협정에 기준으로 포함시킬 것”이라고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은 한국과 같은 환율 조항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부담스럽다”고까지 했다. 환율은 이미 통상의 한가운데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의 환율시장 대처 능력에 제한이 생겼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국제 금융전문가들은 그렇게 잘나가던 일본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단초가 된 1985년 플라자 합의의 그림자를 봤다. 플라자 합의 후 2년 새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50% 이상 올랐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이제 한국의 것이 될 수 있다.

왜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주권적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지 못할까. “우리가 하는 것은 환율 조작이 아니라 환율안정정책”이라고, 통상으로 먹고사는 국가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정부의 기능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는 없었을까.

10년 전 졸속 합의는 정국 혼란으로 연결됐지만, 지금의 졸속 합의는 한국 경제를 서서히 긴 겨울잠으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 시민단체들이 거리에 결집하고 언론이 난리를 치고 야당이 거센 저항을 한 후에야 반응했던 10년 전에는 뒤늦게라도 재협상에 나섰지만, 지금은 그럴 기미조차 안 보인다. 봄꽃에 너무 취한 것일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