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日·中 지도자는 보고, 한국은 못 보는 것
일본의 국토 면적은 37만7915㎢, 한국(남한)은 9만9720㎢로 일본이 4배가량 크다. 영해(領海) 기준으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본 485만7193㎢, 한국은 30만㎢ 남짓이어서 차이가 16 대 1로 벌어진다. 유엔해양법상 각국의 영해로 인정하는 EEZ(Exclusive Economic Zone, 배타적 경제수역) 기준으로 그렇다. 일본이 이렇게 엄청난 해양영토를 거느린 것은 원양(遠洋)의 섬들을 경략(經略)해온 덕분이다. 서쪽으로는 대만 옆에 바짝 붙어있는 요나쿠니, 남쪽으로는 도쿄에서 직선거리로 1740㎞나 떨어진 오키노토리를 영토로 인정받고 있다.

최동단(最東端) 영토는 서태평양상의 외딴 섬 미나미토리다. 도쿄로부터 1900㎞ 떨어진, 면적 1.51㎢에 불과한 이 섬 덕분에 최근 일본이 ‘자원 대박’을 터뜨리며 전 세계를 흥분시켰다. 주변 해저에 1600만t의 희토류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자동차부품에 사용되는 디스프로슘이 세계 수요 기준 730년, 레이저에 쓰이는 이트륨은 780년, 모터 제작에 쓰이는 테트륨은 420년, 액정표시장치 발광제로 활용되는 유로퓸은 620년치가 각각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9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자원 갑질’을 견제하기에 충분한 부존량이다. 아시아가 아니라 오세아니아에 속할 정도로 뚝 떨어진 이 섬이 일본 영토가 된 것은 1876년, 메이지유신 직후다. 해양의 중요성에 눈뜬 메이지 시대 지도자들이 원양해역에까지 눈을 돌린 덕분이다.

해양영토 확장을 향한 일본 정부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최남단 오키노토리는 산호초와 2m 높이의 바위로 이뤄진 암초에 불과하다. 밀물이 가득 찰 때는 수면 위로 고작 70㎝ 정도가 드러날 뿐인 조그만 암초를 영토로 인정받기 위해 1931년 방파제를 쌓고, 두께 50m가량의 콘크리트를 덮어 인공 섬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는 국토연안의 반경 200해리(약 370㎞)까지를 EEZ로 인정하는 국제법을 근거로 42만㎢의 신규 해양영토를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해양영토 야심도 만만치 않다. 면적 350만㎢에 이르는 남중국해를 송두리째 장악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필사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 해역에 있는 센카쿠열도, 남사군도, 서사군도 등을 놓고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과 치열한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이유는 이 일대에 석유 천연가스 등을 포함해 엄청난 자원이 매장돼 있어서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슬로건으로 내건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12일 남중국해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열병식을 하고 “강대한 인민 해군을 건설하는 임무가 오늘날처럼 긴박한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런 두 나라 사이에 낀 한국은 원거리 해양영토는커녕 코앞의 영해까지도 영유권을 위협받는 신세다.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서 149㎞ 떨어져 있는 이어도를 놓고 ‘쑤옌자오(蘇巖礁)’라고 부르는 중국과 분쟁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이어도 인근 항로 관제권을 중국과 일본이 행사하고, 국내 항공사들이 매년 수십억원씩의 관제 비용을 중국에 물어온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빚었다.

해저자원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해양영토를 넓히기 위한 각국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영토의 개념에 육지만이 아니라 해양도 집어넣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국은 이런 ‘해양 경쟁’에서도 뒤처져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전문가그룹과 손잡고 지금부터라도 대책을 서둘러야 할 텐데, 그런 각성(覺醒)은 찾아보기 어렵다. 해양영토만이 아니다. 원양(遠洋)에 이은 또 다른 무주공산(無主空山), 우주를 개발하고 선점하기 위한 각국 경쟁이 달아오르기 시작했지만 한국은 여기서도 ‘열외’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특히 각종 ‘역사 바로잡기’와 ‘적폐청산’ 등 과거를 조명하고 정리하려는 움직임만 넘쳐난다. 부처마다 살기등등한 ‘적폐청산 태스크포스’가 설쳐댈 뿐, 미래 먹을거리를 고민하는 아젠다는 보이지 않는다는 탄식 소리가 높다. 기업과 학계 등 민간을 움직여 창의를 꽃피우게 할 혁신 담론도 실종 상태다. 열강들의 다툼 속에서도 ‘내 편, 네 편 싸움’에만 눈이 멀어 망국을 자초했던 19세기 말의 악몽이 떠오른다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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