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험대에 오른 세계 경제의 정상화

연초 세계 경제는 모처럼 ‘정상화’ 기대가 넘쳤다. 주요 국제 전망기관이 일제히 경제전망을 상향 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세계 경제의 파수꾼임을 자임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을 3.7%에서 3.9%로 0.2%포인트 올렸다. 이는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세계 경제 전망 상향 조정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당시 세계 주요국의 경제지표도 계속해서 청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특히 35%인 최고 법인세율을 21%까지 낮추는 미국의 대규모 감세안 통과와 10년간 1조5000억달러의 인프라 투자계획 발표는 모닥불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었다.
[뉴스의 맥] 약화되는 세계 경기모멘텀… 韓 성장률 3% 어려울 수도
세계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시적인 회복과 반복적인 둔화의 악순환을 끊고 제대로 원기를 회복하며 정상화의 궤도로 복귀하고 있다는 기대가 커진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랄까. 새해 경기 낙관론을 부추기던 경제지표들이 최근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지표 실제치와 예상치 간의 차이를 지수화한 씨티그룹의 경제서프라이즈지수(Economic Surprise Index)는 유럽을 필두로 급락세를 타고 있다. 실제 경제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밑돌기 시작한 것이다.

연초의 낙관적인 전망이 확산된 결과 예상치가 높아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점차 많은 전문가 사이에서는 경기 회복이 막바지에 접어든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 경제는 9년가량 회복 국면을 이어가면서 사상 두 번째 장기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경기 회복의 노후화가 우려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연초의 낙관적 전망에 적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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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재정부양책은 경기 회복의 연장 이상으로 물가 상승 압력만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임금 급등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은 이런 우려와 맞물린 것이었다. 그간 은폐돼 왔던 인플레이션 망령이 분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중앙은행(Fed)이 더욱 공세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 경계심이 부각된 것이다. 미국의 비영리 경제분석기관인 콘퍼런스 보드는 지금의 이런 분위기를 오히려 “과거의 정상(old normal)으로의 복귀”로 환영하기도 한다. 금융위기 이후 뒤틀렸던 경제와 물가 관계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도 간과해선 안 된다. Fed의 금리 인상이 가팔라질 경우 그에 따른 금융 경색이나 유동성 역류와 같은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트럼프의 재정정책을 “위험한 거시경제적 실험”으로 진단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더욱 골치 아픈 문제는 최근 거세진 무역전쟁의 기운이다. 감세나 인프라 투자는 그나마 트럼프의 ‘온건한 이미지(soft trump)’에 속하지만, 이제 그의 ‘험악한 이미지(hard trump)’가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기업가 마인드에 충실한 트럼프는 무역 보복을 통한 직접적인 이해득실에 예민하겠지만, 정작 전반적인 실물경제는 무역분쟁에 따른 피해가 훨씬 크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 경제의 회복은 물론 세계 경제 정상화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쟁점이다.

물론 보호무역의 상호 파괴력을 감안할 때 전면적인 무역 충돌, 즉 ‘고강도 무역전쟁’의 여지는 크지 않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지배구조 자체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자국 이익에 집착한 ‘저강도 무역분쟁’은 일종의 ‘새로운 정상(new normal)’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과거 직접적인 군사 충돌은 억제됐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대리전과 갈등이 이어졌던 ‘냉전(cold war)’에 비춰, 이제 ‘무역냉전(trade cold war)’ 시대가 개막되고 있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경제 정상화' 가로막는 복병들

이런 우려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동안 세계 경제의 정상화 기대를 선도한 곳은 유럽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물론 유럽 재정위기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역내 통합체제의 존망 자체가 위태롭던 유럽 경제가 2016년 후반부터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체제 붕괴 위험의 완화와 유럽중앙은행(ECB) 통화부양책에 의존한 회생일 뿐, 회복 지속력은 자신하기 힘들다. 서프라이즈지수의 급락에서 보듯 최근 유럽의 경기 모멘텀 약화는 이를 사실상 입증한다.

아베노믹스에 의존하는 일본 경제 역시 최근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신뢰 실추와 맞물려 급속히 냉각되고 있고, 경착륙 위험을 떨쳐내며 안정 성장을 이끌던 중국에서도 최소한 단계적인 성장세 둔화는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장기집권 성공으로 2020년 전 국민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샤오캉(小康)사회를 향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노력이 더욱 강화되면서 경제성장을 지탱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지만, 지금의 글로벌 통상 및 금융 환경 변화는 그 향방에 녹록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나아가 극심한 침체에서 벗어나며 주목을 끌던 브라질이나 러시아도 재차 각종 정치적 역풍에 휘말려 고전이 예상되며, 중동 지역에서도 지정학적 갈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모디 정부의 개혁에 탄력을 얻은 인도 경제 역시 앞으로 개혁 피로증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다.

한국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기대 속에 민간소비는 과거에 비해 다소 개선되는 모습이지만, 정작 최근 경기 회복을 견인했던 건설투자는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또 수출이 호조세를 이어가고 반도체와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기업 실적 호전에 힘입어 설비투자도 양호한 흐름이지만, 최근의 국제 무역갈등을 고려하면 그 지속력에는 역시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과 맞물려 실업률이 다시 급등세를 보이면서 우리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온 일자리 창출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청년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4조원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도모하고 있지만, 실제 경기부양이나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이처럼 올해도 3% 경제성장률을 이끌겠다는 정부 목표는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거품 해소란 긍정적 평가도

그렇다고 당장 세계 경제나 한국 경제가 급격한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미국의 경기 회복 부진은 감세에 따른 과세 환급이 지연된 결과라는 해석이 많고,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역시 과도한 낙관론이나 거품 부담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문제는 ‘정상화’에 대해 성급히 축포를 터뜨리는 행태다. 연초의 경제전망 상향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 견지에서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0년대 초중반(세계 경제 4%대, 한국 경제 5%대 성장)과는 여전히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정상화를 논하기에 앞서, 정상화의 제약과 한계를 직시하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경제적 과제를 고민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란 새로운 경제실험에 착수한 우리 역시 단순히 성장률 목표에서 벗어나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되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