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만만찮은 美 '보호무역 바닥 민심'
한국무역협회(회장 김영주) 주선으로 3박4일 일정으로 워싱턴DC를 찾은 20여 명의 한국 기업인이 16일(현지시간) 헤리티지재단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미국기업연구소(AEI) 등 싱크탱크를 방문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모두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라 비판적인 얘기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미국 참석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작스러운 관세 부과를 비판하다가도, 중국 얘기가 나오면 “그래도 이전 정부보다 잘하고 있다”(클라우드 버필드 AEI 선임연구원)는 평가를 내놨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대해서도 예상과 다른 목소리가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잘 돼 있던 협정을 왜 고치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다” “한국이 잘 방어했다”고 공감하다가도 “한국이 기존 협정만 잘 이행했어도 이런 일이 없었다”(제임스 피터리 미 상공회의소 부회장) “대미 적자를 더 줄여야 하고 아직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트로이 스탠거론 KEI 연구원)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은 무리한 것을 요구하다 나중에 실용적으로 양보하는 스타일로 원칙과 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스콧 밀러 CSIS 선임연구원)는 얘기도 있었다.

한국 기업인들 사이에선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을 지지하는 것인지, 비판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런 분위기는 비단 싱크탱크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3월 이후 치솟고 있다. 교역국들에 25% 철강 관세를 매기기 시작한 시점부터다. 최근엔 50%(라스무센 기준)도 넘어섰다. 여론조사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모두 상승세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의 러시아 개입 의혹, 잇따른 섹스 스캔들 등 악재를 누르고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 얘기만 나오면 짜증 내던 국제기구 고위 인사는 최근 “의원들도 트럼프가 경제는 잘한다고 평가하더라”고 했다.

한국 기업인들은 예상치 못한 워싱턴의 보호무역 ‘바닥 민심’을 확인하고 당혹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 기업인은 “듣고 싶은 목소리보다 꼭 들어둬야 할 목소리를 듣게 된 게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