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외건설, 응변창신의 정신 필요하다
해외건설은 우리 경제에 ‘건설적(建設的)’이었다. ‘건설적’은 어떤 일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는 뜻이다. ‘적극적’ ‘생산적’ ‘긍정적’과 같은 의미다.

제2차 석유파동이 막 끝난 1980년대 초반 해외건설은 4년간 86억달러를 벌어들여 당시 238억달러에 달했던 원유 수입대금의 36%를 책임졌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53억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여 무역수지 적자액의 10%를 보전했다. 수출에도 기여했다. 해외수주 실적은 2010년 716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2014년까지 600억달러를 초과했다.

이후 해외건설은 움츠러들었다. 해외수주는 2015년부터 감소해 2017년 290억달러까지 줄었다. 저유가로 중동 지역의 대규모 플랜트 발주가 줄어든 탓이다. 수주 여건도 호의적이지 않다. 신흥국은 기술력이 높아졌고 선진국은 양적완화로 가격경쟁력이 개선됐다. 원화 강세로 수익성 악화도 우려된다. 국내 건설사들은 저가수주 논란에 대규모 손실이 겹치면서 공격적인 수주전략을 피하고 있다. 어렵기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도 2012년과 2013년을 정점으로 해외건설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독일은 2015년 해외매출 세계 6위(291억달러)를 기록했지만 이듬해 9위까지 밀렸다. 반면 한국의 해외건설 매출은 2016년 339억달러로 3년 연속 5위 안에 들며 선전했다. 한국 해외건설 시장을 비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해외건설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성장의 변곡점을 찾아야 한다. 응변창신(應變創新: 변화에 대응하고 새롭게 창조한다)의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 해외수주의 90%는 중동·아시아 지역에서 이뤄졌다. 시장 다변화를 위해 시장별 수주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중남미·아프리카 등 신흥국은 재원이 부족해 수주 조건으로 금융 조달을 요구한다. 발주자가 원하는 금융을 제공하기 위해 자금 조달 역량을 키워야 한다. 미주·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도 진출해야 하나 현재 경쟁력으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 기술력 있는 해외기업을 인수합병하거나 합작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해외건설과 정보통신기술(ICT) 간 융복합으로 창출되는 새로운 수익원도 찾아야 한다. 구글, 애플이 자동차를 만드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건설업계 텃밭으로 여겼던 인프라 영역에도 구글·IBM 등 ICT 기업들이 진출하고 있다. 전기차 무선충전 인프라, 자율주행을 가능케 하는 스마트 도로 등이 대표적이다. 건설이 주도하는 융합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해외건설도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워야 한다.

공공부문도 해외수주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정상 방문 시 아랍에미리트(UAE)는 한국 기업에 250억달러 규모의 석유·가스 사업 참여를 제안했고, 한국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해외건설 시장에서는 기술력뿐만 아니라 금융 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수주 기업의 직접 투자와 금융 조달을 요구하는 ‘투자개발형 사업’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저리의 장기·거액금융 조달 지원을 통해 우리 기업의 해외수주를 돕고 있다. 프로젝트 위험분석과 객관적인 시장판단으로 건설·금융 동반 진출도 지원하고 있다.

‘미스터 엔(円)’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차관은 “1991년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 아니라 ‘성숙해진 20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우리 해외건설도 지금의 침체기를 준비 기간으로 삼아 반드시 재도약을 이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