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데스크 시각] 삼성 반도체라는 국익 지키기
삼성 반도체 사업을 놓고 공익과 국익이 충돌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 입증을 돕는다며 유족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에게도 삼성전자가 보고해 놓은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결정했다. 종합편성채널 PD가 정보공개를 청구하자 기흥·화성·평택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했다.

고용부가 선택한 것은 공익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웠다. 삼성은 보고서 공개를 막기 위해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보고서에 담긴 반도체 생산라인 배치나 화학물질 사용에 관한 정보가 핵심 기밀이라며 공개할 경우 해외로 유출될 수 있고 이는 국익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35년 노하우 공개하라니…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D램 시장점유율은 45.3%로 세계 1위다. 삼성 반도체공장 고용 인원이 4만9000여 명에 달하고, 반도체 수출은 한국 전체 수출의 17.4%를 차지한다. 이 같은 삼성 경쟁력의 요체는 칩 설계기술, 생산공정기술이다. 반도체 사업은 경쟁사보다 빨리, 더 뛰어난 칩 설계기술을 개발한 뒤 수율 높은(불량률 낮은) 생산공정기술로 칩을 대량 생산해 가격을 주도해야 승리한다. 수율이 높아야 마진율이 높다.

삼성은 1983년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칩 설계기술 이전계약을 맺고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생산공정기술 자립을 이루지 못했다면 세계 1등으로 올라서지 못했을 것이다. 삼성전자 40년 사사(社史)가 이를 확인해 준다.

‘원천기술 못지않게 생산기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제품이므로 우리나라 같은 후발 반도체 산업국도 공정기술만 어느 정도 확보하면 단기간에 선진국과 경쟁이 가능했던 것이다.’

사업 초기 해외 선진 업체들이 삼성에 공정기술을 가르쳐줄 리 만무했다. 일부 엔지니어들이 엄중한 보안 속에 일본 반도체공장을 겨우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들은 귀국해 조각조각의 기억을 되살려 생산라인 배치 방식 등 공정기술을 개발해 나갔다. 이른바 리버스 엔지니어링이었다.

장기적 안목으로 판단해야

그렇게 해서 1990년 64M D램 개발과 양산을 계기로 일본을 따라잡았다. 이후 해외 경쟁사들보다 6개월에서 1년 앞서 제품을 내놓는 생산공정 경쟁력을 키웠다.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 업체들이 요즘 초기의 삼성처럼 공정기술 확보에 사활을 건 까닭을 알겠다. 김기남 삼성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이 30여 년 쌓아온 공정기술을 절대 공개해선 안 된다고 우려한 이유다.

고(故) 이병철 회장은 1983년 2월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이렇게 밝혔다. ‘언제나 삼성은 새 사업을 선택할 때는 항상 그 기준이 명확했다. 국가적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해가 어떻게 되느냐, 또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기준에 견줘 현 단계의 국가적 과제는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혁신의 핵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회장의 선견지명은 적중했다. 각국이 삼성 반도체 같은 ‘고부가가치 국익’을 창출하고, 보호하려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에 삼성 반도체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타도 대상이다. ‘과도한’ 공익 추구에 밀린 국익이 행정소송과 행정심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삼성 반도체의 지난한 발자취를 뒤돌아보면 답이 나온다.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