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광장과 정치
오래된 유럽 도시들의 중심지역은 대개 빼닮은 듯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도심에 고색창연한 교회나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교회 앞은 광장이다. 시청 등 관공서와 개성 있는 상점들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 교회 공사의 건축자재를 쌓아뒀던 공간이 광장이 됐다는 연구도 있지만, 어떻든 도시가 성장하면서 광장은 자연스럽게 시장이 됐다. 지금도 구(舊)도심 광장을 중심으로 관광과 쇼핑이 이뤄진다. 도시 건설 초기부터 광장이 개발의 기초이자 중심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유럽 도시의 특징적 공간인 광장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연결된다. 고대 도시의 광장 격인 아고라는 경제와 정치, 사교와 문화 공간이었다. 유서 깊은 유럽 도시의 광장들은 대부분 그다지 넓지는 않다. 건설 당시 사회적 생산력이 반영된 결과이겠지만, 교류와 시장기능 중심으로 보면 굳이 커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대조적인 것이 근대 이후 사회주의 계열 국가들이 건설했거나 관리해 온 초대형 광장이다.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광장, 옛 소련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이 대표적이다. 인민군 무력시위로 우리에게 낯익은 평양의 ‘김일성광장’이란 곳도 그런 유형이다. 최인훈이 일찍이 소설 《광장》에서 북한을 ‘광장의 사회’로 묘사한 것은 이런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작가적 안목을 보여준다. 최인훈이 본 북한의 드넓은 광장은 ‘집단적 삶’ ‘사회적 삶’의 상징이었다. ‘개인적 삶’ ‘실존적 삶’을 담보하는 밀실을 찾아볼 수 없는 사회였다.

한때 ‘5·16광장’이라고 불렸던 여의도광장이 여의도공원으로 바뀐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국가 권위주의나 집단주의를 연상시킬 만했던 여의도광장이 공원으로 재탄생한 지도 어느새 20년 됐다. 이젠 숲이 볼 만한 시민공원이 됐다.

광화문광장을 3.7배 더 확장하겠다는 서울시 발표를 놓고 온갖 의견이 나온다. “광장 조성 10년 만에 1000억원이나 들여 또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냐” “돈 들여 교통지옥 만들 텐가” 등의 문제 제기가 크게 들린다. 세종대로가 10차로에서 6차로로 줄어들고 주변 연결도로까지 확 줄어드니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수도의 1번 거리가 이렇게 자주 바뀌는 나라가 또 있나”라는 은근한 비판도 있다.

이런 논란보다 더욱 치명적인 한계점은 현대 정치에서 갖는 ‘광장의 의미’일지 모른다. 가뜩이나 중우정치가 심화된다는 현대다. 광장의 군중이 거리의 선동 정치인과 손잡을 때 대의제 민주정치는 설 자리가 없어져갈 것이다. 넓어지는 광장이 획일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인 ‘대중 독재’의 무대가 될까 겁난다. 광장이 직접민주주의의 성지라도 되면 고대 그리스처럼 궤변론자도 줄줄이 나타날 것이다. 넓은 광장을 지혜롭게 이용할 만큼 우리 시민의식은 성숙해 있는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