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 투자 막힌 사면초가 경제
한국 경제가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리는 형국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법인세 인하, 노동개혁, 투자환경 개선 등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투자촉진에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한국만 정반대 길을 걷고 있다. 법인세 인상,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상법개정,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성과급 폐지, 임금 인상,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몰아치는 반(反)기업, 친(親)노동 정책으로 인해 기업들은 투자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 해 설비투자 150조원 중 80~90%는 대기업이 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기업 투자가 얼어붙으면 투자빙하기가 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기업들은 투자는커녕 정부정책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만 수조원씩 쏟아붓고 해외투자에만 치중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는 437억달러로, 처음 400억달러 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설비투자증가율은 -0.7%에 머물렀다. 건설투자는 더 심각하다. 몰아치는 부동산 규제정책으로 지난해 4분기 건설투자 증가율은 -2.3%로 고꾸라졌다. 최저임금 급등으로 어렵기는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수출은 3월에 전년 동월 대비 6.1% 증가한 515억달러를 기록했지만 이는 108억달러에 이른 반도체 수출호조에 힘입은 것이다. 그 외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가전 등 대부분 품목은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다. 제조업평균가동률은 금융위기 기간을 제외하고는 사상 최저 수준인 71~72% 수준을 맴돌고 있다. 이러니 일자리가 생길 리 없다. 중국과 미국의 반도체 추격이 만만치 않은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은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대미(對美) 철강수출 쿼터는 절반으로 준 반면 자동차 수입 쿼터는 두 배로 늘었다. 설상가상 외환시장 개입 금지 등 ‘환율합의’는 한국을 과거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을 따라가게 할 것이라는 우려를 크게 하고 있다.

소비는 더욱 암울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 143%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수많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170%를 넘어섰다. 실업도 증가해 소비여력이 줄어들면서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71% 수준까지 하락했다. 1970년대 초 70%대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은 점차 줄어들어 지난해 48.1%까지 하락했다. 미국 68.1%, 영국 64.9%, 일본 56.6%, 독일 53.9%(2015년 기준)에 비해 너무 낮은 수준이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 135%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을 100%까지 낮추는 데 성공해 GDP 중 68%에 달하는 민간소비가 살아나면서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

한국은 이 같은 미국의 성공사례에서 배우기는커녕 거꾸로 가는 정책을 되풀이하고 있다. 통화정책은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를 맞아 자본유출과 경기회복, 가계부채 문제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고, 조세·재정 부문은 막무가내식 퍼주기로 재정위기를 재촉하고 있으며 환율은 스스로 족쇄를 차는 등 거시정책이 모두 위기다. 노동경직성은 심해지고, 규제는 더욱 기승을 부리는 등 미시정책도 거꾸로 일색이다. 170%가 넘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을 민간소비가 살아날 수 있는 100% 수준까지 낮추는 데는 20여 년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은 장기불황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한번 추락하면 다시 추스르기 힘든 게 경제다. 1960년대 한국보다 세 배나 잘살았던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사례가 남의 얘기가 아니다. 1인당 소득이 3만달러에 이르렀다가 재정위기로 1만8000달러대로 추락한 그리스의 예도 그렇다.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나 이념의 잣대를 고집하면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후손들의 고통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