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공무원시험 문제
“문제를 이따위로 출제하면 안 된다. 출제자가 갑의 위치에서 갑질하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치러진 서울시 공무원 7급 시험문제를 두고 유명 온라인 강사가 비속어까지 섞어가며 비난한 말이다. ‘학원 강사나 대학교수도 못 맞힐 지엽적인 문제’라는 지적에 수많은 공시생은 ‘핵사이다’라며 공감을 표했다.

논란이 된 한국사 7번 문제는 고려 후기의 역사서 4종을 시간순으로 배열하라는 것이었다. 이 중 《고금록》(1284)과 《제왕운기》(1287)는 고작 3년 차이다. 이를 알고 맞히든, 찍어서 맞히든 공무원 자질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강사는 “문제가 저질”이라고 일갈했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 7일 치러진 9급 국가공무원 공채 한국사 시험은 강사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난도가 높았다. 이를 테면 고려 시인 진화와 교류한 인물의 저서, 조선 성리학 학설과 동향의 변화 순서 등을 묻는 식으로 일관했다. 예비 공무원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이나 역사의 교훈을 공부하게 하는 게 아니라, 암기력 테스트만 더욱 고도화되는 판이다.

지난달 10일 국가공무원 5급 공채 및 지역인재 7급 필기시험의 헌법 9번도 공시생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헌법 전문(前文) 가운데 ㉠대한민국 ㉡1947년 ㉢9차 등 세 곳을 밑줄 치고 틀린 것을 모두 고르라는 문제였다. 여기서 대한민국은 ‘대한국민’, 1947년은 1948년, 9차는 8차여야 맞는다. “틀리라고 낸 문제” “치졸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최근에는 북한사까지 공무원시험에 등장했다. 지난달 서울시 9급 기술직 한국사 시험에 북한 정권 수립과정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공시생들은 “평양시 기술직 시험인가”, “북한사도 공부해야 하나”라는 볼멘소리가 많았다. 지난해 9월 경찰간부후보생 시험에도 북한정권 수립에 관한 문제가 출제됐다.

물론 출제자들도 고충이 있다. 낼 만한 문제는 죄다 학원문제로 돌아다닌다. 반면 경쟁률은 수십 대 1에 달해 변별력을 갖춰야 한다. 이 때문에 수능에선 만점자가 나와도 공무원시험은 만점 방지용 문제가 있어 만점자가 나오기 힘들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한 문제로 당락이 갈리는데 문제를 비비 꼬고 시시콜콜한 내용을 묻는 식이면 곤란하다. 이런 ‘허접한’ 문제를 푸느라 청년들이 하루 10시간 넘게 머리를 싸매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노량진 학원가에는 젊은이들이 넘치는데 생기가 없다. 길을 가면서도 강의 이어폰을 끼고 수험서에서 눈을 못 떼 ‘강시’ 같다. 그런 공시생이 44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공시생 급증을 한탄하기 전에, 기업을 활성화시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이자 의무다. 청년의 미래가 나라의 미래 아닌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