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외국 투자기업에 기술 이전을 강요하는 법률조항을 이유로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자, 일본·유럽연합(EU)은 제3자 자격으로 미·중 지식재산권 분쟁 협의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아무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중국의 지재권 침해 조사 보고서에서 ‘중국제조 2025’ 단어를 116번이나 언급한 것은 중국이 국가주도 산업고도화 정책을 펴면서 미국의 지재권을 훔치고 있다는 우려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지재권 침해 제소는 조직적인 해외 첨단기업 인수·합병(M&A), 합작투자 및 강제적인 기술 이전 협정, 산업스파이 활동 등 중국의 ‘지재권 도둑질’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의지의 표출일 것이다. 여기에 일본·EU가 참여 방침을 밝힌 것은 중국의 지재권 침해가 미·중 차원을 넘어 세계적 이슈임을 웅변해준다.

한국도 중국의 지재권 침해로 인한 심각한 피해국이긴 마찬가지다. 중국 진출 국내기업에 대한 부당한 기술이전 강요, ‘소송을 해볼 테면 해 보라’는 식의 노골적인 특허 및 상표권 침해, 기술 유출을 노린 M&A 및 기술인력 빼가기, 지재권 침해 물품의 국내시장 역류 등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어렵다. 정부는 ‘차이나 데스크’다 뭐다 대응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갈수록 지능화하는 중국의 지재권 침해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미·중 지재권 분쟁을 미·중 남중국해 갈등과 동일선상에서 바라봐선 안 된다.

한국은 미국·EU와 달리 중국의 시장경제국 지위 부여에 앞장서 찬성했지만, 돌아온 것은 경제 외적인 사안을 빌미삼은 사드 보복이었다. 한국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지재권 침해 제소에 침묵하거나 중립을 지킨다고 중국이 한국을 배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착각이다. 더구나 한국이 중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은 중국의 지재권 침해에 아무런 방어 역할도 못 하는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의 지재권 침해 문제는 한국도 분명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일본·EU처럼 제3자 자격으로라도 미·중 협의에 참여해 중국에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