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나무의 생태인문학
나이 먹을수록 나무가 달리 보인다. 봄 나무는 빨리 성장하지만 무르고, 겨울 나무는 더디 자라지만 단단하다. 꽃 피고 질 때의 밀도도 다르다. 계절 따라 바뀌는 나무의 생장 과정에 우리 삶을 비춰본다.

나무 목(木)은 뿌리와 줄기의 형태를 본뜬 글자다. 대지에 뿌리를 깊게 박고 하늘로 가지를 펼친 모양이다. 뿌리에 가로줄(一)을 그으면 근본 본(本)이 된다. 나무의 근본이 뿌리라는 의미다. 가로줄을 가지에 짧게 그으면 아직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뜻의 아닐 미(未), 길게 그으면 가지 꼭대기라는 뜻의 끝 말(末)이 된다.

또 다른 한자로 나무 수(樹)가 있다. 목(木)이 죽은 나무(고목)나 재료(목재)까지 포함하는 개념인 데 비해 수(樹)는 살아 있는 나무(가로수)나 생물학적 분류로서의 나무(활엽수·침엽수)를 가리킨다. 나무의 액체를 수액(樹液), 나이를 수령(樹齡)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무 목(木)이 둘 모이면 수풀 림(林), 셋이 모이면 수풀 삼(森)이다. 많은 나무가 늘어선 모습이어서 숲을 삼림이라고 한다. 우주의 모든 현상을 의미하는 삼라만상(森羅萬象)도 이 한자에서 유래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松)는 목(木)과 공(公)을 합친 글자다. 진시황이 태산에 올랐다가 큰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한 뒤 ‘오대부(五大夫)’라는 벼슬을 내린 데서 연유했다. 소나무는 옛날부터 배를 만드는 재료였다. 2005년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에서 발굴된 8000년 전 신석기 시대 배도 소나무로 건조했다. 임진왜란 때 우리 수군의 승리 또한 소나무로 만든 병선 덕분이었다.

대나무는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식물이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처럼 비 온 뒤에는 하루 50㎝까지 자란다. 빠른 성장 때문에 마디 사이에 진공이 생긴다. 대나무를 태우면 굉음이 난다. 그게 폭죽(爆竹)이다.

살구나무는 옛 시에서 ‘술집’의 은유로 자주 등장한다. ‘살구꽃 피는 마을’인 행화촌(杏花村)이 곧 주막이다. 당나라 시인 두목의 시 ‘청명 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길가는 행인 너무 힘들어/ 목동을 붙잡고 술집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더니/ 손 들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청명(淸明)’)에서 나왔다.

나무의 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뿌리는 물()을 빨아들인다. 숲 1ha(100㎡)가 연간 16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12t의 산소를 뿜어낸다. 하루에 필요한 1인 산소량이 0.75㎏이라니 숲 1ha의 산소로 45명이 1년간 숨쉴 수 있다.

해마다 촘촘해지는 나무의 나이테는 우리 인생의 여정과 같다. 그 무늬와 결에 따라 꽃과 열매가 달라지는 이치도 닮았다. 오늘 식목일을 맞아 나무를 삶의 스승으로 모시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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