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보따리장수 신세 된 중학교 소프트웨어 교사
서울 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인 A씨는 3월 신학기부터 매주 세 곳의 학교에서 수업하고 있다. 그가 맡은 교과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정보 과목. 주초에는 소속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이후에는 인근 학교를 옮겨 다니며 강의한다. A씨가 정규 교사인데도 졸지에 대학 시간강사처럼 보따리장수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올해부터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학교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한다. 정부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적합한 컴퓨팅 사고(computational thinking)가 디지털 시대 필수 소양이라고 판단해 2015년 정보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올해 먼저 중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했고 내년에는 초등학교 5·6학년으로 확대한다.

문제는 교육 시간이다. 중학교 3년간 편성된 코딩 수업은 총 34시간. 1주일에 한 차례씩 45분짜리 수업을 두 학기만 들으면 된다. 컴퓨팅 사고를 기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수업 시간이 짧다 보니 학교마다 정보 담당 교사를 둘 필요가 없다. A씨의 학교처럼 필수 과목 지정 전에 정보 과목을 가르치던 곳은 정부 기준에 맞추다 보니 수업 시간이 도리어 절반으로 줄었다. A씨가 올해부터 여러 학교를 다녀야 겨우 수업 시간을 채울 수 있게 된 이유다. 학생은 물론 교사까지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게 하는 시스템이다.

공교육이 이처럼 겉돌고 있는 반면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는 벌써 소프트웨어 교육 바람이 거세다. 대학입시 과목이 아닌데도 지난 1년 사이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코딩학원이 10여 곳 새로 들어섰다. 소프트웨어 사교육 바람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대도시에서 방학 때 열리는 유명 코딩 캠프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서너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수백만원의 수강료를 받는 코딩학원까지 생겨났다. 국제컴퓨터학회는 2020년까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일자리 절반 이상이 컴퓨팅과 관련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전망이 맞을지 속단할 수는 없지만 디지털 시대 컴퓨팅 사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변화다.

국내 소프트웨어 공교육은 이제 첫발을 내디뎠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정보 교육 격차가 벌어지는 걸 그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한국정보과학교육연합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안성진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는 학교에서 소프트웨어를 배워도 충분하다고 설명하지만 발 빠른 부모들은 이미 사교육 시장을 찾고 있다”며 “학생 간 정보 교육 격차가 커지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컴퓨팅 사고를 익히지 못하면 사회에 나가 펼칠 경쟁에서도 뒤처질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소프트웨어 공교육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는 수업 시간부터 확대해야 한다. 아니 정상화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창의력과 컴퓨팅 사고를 익힐 수 있도록 최소한의 수업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소프트웨어 필수 교육을 시작한 영국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가르친다. 정부는 3년 전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 선언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소프트웨어 교육 시간 확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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