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갑 칼럼]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企業人으로 살아가고 싶다
학형(學兄)! 1974년 3월 어느 날 ‘경영학 원론’ 강의실에서 우리는 노교수님께서 칠판에 쓰신 ‘계속기업(繼續企業): a going concern’에 관한 내용을 열심히 베껴 쓰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경영학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었지요.

45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뛴 지금, 우리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진행되는 4차 산업혁명의 급격한 변화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포천 세계 500대 기업’ 중 약 70%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월마트, 제너럴일렉트릭(GE), 포드 같은 기업도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의 진실 여부를 떠나 실제로 현장에서 숨 가쁘게 뛰고 있는 대다수 기업인이 절감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책 소매 업체에 불과하던 아마존으로부터 거칠게 공격당하고, 세계 택시업계는 실리콘밸리의 작은 스타트업에서 출발한 우버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세계 산업 생태계는 급속하고 파괴적인 경쟁이 일반화한, 산업과 기업 간 융복합을 통한 혁명적인 신기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분출하는 초유의 사태에 맞닥뜨렸습니다. 속도와 영역, 국경이 의미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혁신은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주체의 몫입니다. 더 이상 기업과 정부 연구개발(R&D) 부서만의 일이 아닙니다. 국회와 정부가 표심만을 의식한 채 제3자적인 입장을 고수하면 국가의 미래는 없습니다. 갖은 국난과 위기에 맞닥뜨릴 때마다 우리 국민은 해낼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감언(甘言)만을 쏟아내서는 안 됩니다.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권한 있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용기를 내고, 자기도 모르게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를 씻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산업 생태계가 세계사적 기업 환경 변화의 급물살에 쓸려 내려가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우리 산업과 기업들은 세상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고 때로는 감내할 수도 없는 법령과 정책, 제도들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더욱 힘든 것은 이런 현재진행형이 합리적인 대안도 없이 언제 마침표를 찍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시장의 냉혹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기업과 산업은 바로 그 시장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억지로 왜곡시키면 시장은 반드시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토록 한다는 ‘치명적 자만(自慢)’의 역설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학형! 그 시절의 강의실에서 우리는 계속기업의 필요충분조건으로 ‘투철한 기업가정신’과 ‘지속성장 가능성’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이를 위협하는 빨간불이 많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최근 국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현행 상속·증여세 제도가 유지되는 한 조만간 우리나라 주요 기업 대부분이 펀드를 위시한 유사 금융사들의 손에 들어갈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감당할 수 없는 상속·증여 실효세율과 복잡한 사전·사후관리 요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영권을 포기하거나 기업을 매각하고 해외로 근거지를 옮기는 기업이 늘고 있습니다. 급격한 기업 환경 변화를 따라가기도 벅찬데, 현실성이 없거나 불가능한 사후관리 요건들, 실질실효세율이 65%를 넘어서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기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농우바이오, 카버코리아, 휴젤, 락앤락 등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일찌감치 가업승계를 포기하고 기업을 매각한 이유입니다. 더 많은 기업이 억울한 심정으로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2012년 재정절벽 회피 법안(American Taxpayer Relief Act)을 개정해 2013년부터는 가업상속공제제도 자체를 폐지했습니다. 독일, 일본도 사회적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 사후 요건은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으나 사전 요건을 간단명료하게 적용해 기업의 영속성을 유지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더불어 경영권 방어를 위한 많은 수단과 제도를 마련해 기업 본연의 가치인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학형! 휘몰아치는 세계 정치와 무역전쟁에서 우리끼리만은 서로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그런 공동체이기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내 나라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더 자랑스럽게 더 오랫동안 훌륭한 기업인으로 남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