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미국으로 유학 간 때가 1990년이니 어언 30년이 다 돼 간다. 당시 기숙사와 캠퍼스를 오가는 셔틀버스가 운행됐다. 어느 날 셔틀버스가 멈춰 섰는데 창밖을 보니 휠체어를 탄 장애 학생 한 명이 있었다. 앞쪽에 있던 학생들은 버스 의자를 접기 시작했고, 운전사가 레버를 조작하니 승차 계단이 ‘ㄴ’자 모양으로 펼쳐졌다. 한 학생이 버스 밖으로 나가 휠체어를 묶어줬고 운전사가 레버를 조작해 휠체어를 버스 안으로 끌어 올렸다. 셔틀버스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수업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이었다.

그 후 캠퍼스 내 장애 학생들과 어울려 생활하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장애인을 보면 나도 모르게 뛰어가 도와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나중에 교육 조교가 됐을 때도 학교 측의 장애 학생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시험을 칠 때 학교 당국은 미리 장애 학생 수와 등급을 알려줘 시험시간을 차별 적용하도록 했다. 중증 장애 학생에게는 전공이 다른 학과의 교육 조교를 붙여 답안지 작성을 돕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세월이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어떤가.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를 세우려고 할 때마다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낀다. 물론 재산상 피해를 우려하는 주민들에게 특수학교 설립을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특수학교를 대학 캠퍼스 내에 지으면 어떨까. 선정된 대학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고, 학생들은 캠퍼스 내 장애 학생들과 자연스레 친해지면서 배려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줄어들고 우리나라에도 헬렌 켈러, 스티븐 호킹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애인 명사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정홍열 <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