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알래스카와 앵커리지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이기로 했을 때 곳곳에서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하원 의원들은 “미국 본토와 연결조차 되지 않은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국무장관 수어드의 이름에 빗대어 ‘수어드의 냉장고’ ‘수어드의 바보짓’이라는 조롱까지 난무했다.

수어드는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720만달러에 알래스카를 구입했다. ㎢당 5달러의 헐값이었다. 30년 뒤인 1897년 알래스카에서 금광이 발견됐다. ‘골드러시’가 일어났다. 석탄 매장량도 세계 1위 규모였다. “미국인이 알래스카의 가치를 발견하려면 한 세대가 지나야 한다”던 수어드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냉전시기에는 러시아(옛 소련)를 견제할 지정학적 요새로서의 군사적 가치까지 부각됐다.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판 것은 재정난 때문만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크림전쟁 중 캄차카 반도에서 영국과 두 번의 전쟁을 벌였다. 베링해 건너의 영국 식민지인 캐나다와 국경을 접한 알래스카를 방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적국인 영국에 빼앗기는 것보다는 우호적인 미국에 파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러시아로서는 미국에 알래스카를 넘기면 캐나다가 포위되므로 그 또한 괜찮은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셈법을 감안하더라도 러시아가 단돈 720만달러에 광활한 영토를 넘긴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골드러시 때 1년에 채굴한 금값만 720만달러가 넘었다.

알래스카 면적은 171만7854㎢로 남한의 17배에 이른다. 미국에서 가장 넓은 주다. 인구는 약 74만 명으로 가장 적지만 풍부한 자원 덕분에 주민 소득은 1~2위를 다툰다. 지난해에 12억 배럴이 매장된 거대 유전이 또 발견됐다.

알래스카의 주도는 남부에 있는 주노이지만, 가장 큰 경제도시는 앵커리지다. 강 하구의 정박지로 닻(anchor)을 내려놓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한때는 아시아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중간 기착지였다. 가난한 유학생들이 해외입양아를 안고 공항 로비에서 우유를 먹이는 모습도 흔했다.

알래스카는 수산업으로도 유명하다. 연어와 명태, 대구 등 5개 어종이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호수가 300만 개나 되는 관광지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오로라를 보러 몰리는 관광객이 줄을 잇는다.

오늘은 151년 전 알래스카 거래가 이뤄진 날이다. ‘마지막 프런티어’라는 알래스카주의 별명처럼 이곳에서는 지금도 새로운 자연과 관광 자원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혹한의 얼음땅이 이렇게 풍요로운 땅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카리부(순록)와 바람이 가는 곳은 아무도 모른다’는 알래스카 속담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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